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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및 수필

세계관 변화에 따른 심리치료(정신치료)

참자기 2013-12-22 (일) 12:35 10년전  
세계관 변화에 따른 심리치료(정신치료)
 
예수님의 탄생이후 서방에서 암흑기라는 불리는 천년의 종교시대가 있었고, 근대에 들어서 계몽사상으로 인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이성과 경험과학을 통해 자유를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때 계몽사상은 고대 서방의 마술적이고 종교적이며 신화적인 세계관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경험적인 보편성의 세계관으로 옮겨놓는 정신의 혁명을 가져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고대에서 근대로 세계관이 변화하면서 정신현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크게 바뀌게 되었다. 사람이 밤마다 꿈을 꾸는 정신기제가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그동안 꿈이 신의 목소라고 믿어왔던 굳은 신념에 상처를 줬다. 또한 인간이 금기시했던 깊은 불안, 수치심 그리고 죄책감 등 영혼결핍의 기원이 해체되면서 신의 저주로 생각했던 사람의 운명이나 정신질환, 이상행동, 성격, 감정 그리고 정체모를 없는 혼란과 불안 및 고통 등에 관한 신비로운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신과 신체 그리고 이들의 상호성에 대한 연구인 정신분석의 탄생은 사람과 세계에 대한 인식에 충격적인 혁명을 가져왔다. 이것은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것을 밝힌 쿠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학문, 가치관, 문화와 보편적인 생각을 통채로 바꿔놓은 것처럼 인류사에 거대한 진보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고대의 정신치료는 뇌나 마음에 마귀, 귀신 또는 다른 나쁜 영들에 영향을 받았다고 여겼기에 치료는 주술적인 의식에 의존했다. 이러한 주술적 의식을 통한 치료는 지금도 근대적 세계관이 영향을 받지 않은 소수 종족들에게서 원시적으로 정신치료했던 발자취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원시 부족은 아직도 샤먼인 무당이나 점술사들을 통해서 신체적 질환을 치료한다. 우리나라도 얼마전까지 무속인을 통해 알 수 없는 정신의 현상과 병들 그리고 집안의  경조사와 중요한 일정을 의뢰했고 현재까지도 정신세계에 관한 무지로 인해 일부는 아직도 원시적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는 학벌이 높은 지식인과 사회적 위치는 필요없어 보인다. 다만 자신의 정신세계를 합리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하기에, 마술적이며 주술을 통해 전능함과 전지성을 소유하고 싶은 유아적인 욕구가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것 같다. 인류의 정신이 그리고 한사람의 정신이 이처럼 마술적이고 주술적이며 신화적인 고대세계관에서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이성중심의 근대세계관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고대의 전통적인 치료방법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원시적인 부족에게 정신치료는 근대적 경험과학과 이성의 합리성을 토대로 한 자아(ego)라는 채널을 통한 치료보다, 주술적인 의식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사람의 정신에 대한 접근은 객관적 이성이라는 기호체계를 통한 접근보다, 주술에서 사용하는 상징적 이미지를 통한 접근이 더 근원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성이라는 문자와 정서(emotion)를 배우기 위해 이미지와 정동(affect)이 먼저 몸에 체득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생각한다면 근원적 접근이라는 말이 타당하다.
한 사람 몸에 체득된 이미지와 정동의 세계가 언어와 정서로 의식화되어 표현되지 못하여 억압되거나 왜곡되어 표현되는 방식은 성격, 행동, 신체증상, 관계나 삶의 문제 등으로 나타나 운명처럼 고통을 안고 살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신치료를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환자가 한 세션 상담이나 치료로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과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이다. 내담자(환자)가 유아기때부터 서서히 형성된 마음과 정신의 문제를 외과적 수술처럼 단숨에 해결하려는 마술적인 방법을 원할때는 차라리 무속인을 찾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미지나 심상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원시적이고 주술적인 치료가 언어라는 고등기호처럼 정신세계를 각인하는 것이 낮기 때문에 잠시 정신치료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그 상태를 유지하는 항상성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고대의 치료법은 빈번한 재발률과 심지어 더 악화된 상태가 되어 치료기회를 잃어버리기 일수였다. 이 때문에 정신분석도 고대의 치료법에서 착안한 최면기법을 초기에 잠시 사용하다가 일찌감치 버린 것이다.
 
최면은 고대에 주술사나 샤면이 종교의식을 통한 치료에서 먼저 사용했고, 근대에 와서 오스트리아의 의사이자 철학박사인 “안톤 메스머(Mesmer 1734-1815)”에 의해 프랑스에서 의학적 방법으로 도입되었다. 이후 1840년대 최면치료는 유럽에서 잠시 인기를 끌었다. 이때 프랑스의 신경생리학자 "샤르코(Jean Martin Charcot 1825 ~ 1893)” 도  최면기법을 사용하여 정신을 치료했는데, 프로이트는 샤르코에게 최면을 사사받는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정신치료에서 최면치료의 부작용이 빈번함을 발견하고 자아(ego)를 채널을 사용하는 새로운 정신치료를 창시하게 된다. 이것은 정신분석에서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을 자유롭게 말하는 자유연상기법이다.
 
정신분석에서 치료는 내담자(환자)의 합리적이며 관찰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자아(ego)의 기능을 통해 정신세계에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자아(ego)가 연약한 상태라면 합리성을 가질 수 없는 원시적이고 마술적인 고대 이전의 세계관에 압도되기 쉽다. 이때 나와 너의 경계는 혼미하고 외부와 내부의 자극의 분별이 어렵기에 신체적 고통인지 정신의 고통인지 지각이 모호하다. 흔히 유아들의 자아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신체와 정신이 하나라고 느끼면서 구분하지 못하는 시기를 거친다. 이때 유아의 자아(ego)는 신체적 자아(body ego)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 자아(body ego)는 신체와 정신이 개별적으로 분류되지 않고 하나로써 지각되기에 유아는 정신의 불쾌함은 배가 고프거나 잠을 못자서 생긴 신체적 불쾌함과 같은 것이라고 여긴다. 신체적 자아(body ego)는 성인이 되어서도 정신에 일부분 남아 있어서 정신에 불쾌함이 생기면 음식을 먹거나 잠으로 해결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문제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아(ego)가 이렇게 유아적인 신체적 자아(body ego)에 고착되어 성격으로 조직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신의 고통을 만성적으로 신체적인 자극을 통해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면 술을 먹고 스트레스를 풀거나, 마음이 복잡하면 티비나 멍을 때리면서 아무생각을 하지 않거나, 우울하면 먹거나 쓸데없는 수다를 떨거나, 불안하면 남에게 시비를 걸거나 잠을자거나, 때로는 정신적 고통을 견디다못해 몸이 신경증 질환으로 소화불량, 알러지, 신체마비 증상, 끊임 없이 남을 의심, 피해의식과 강박, 과도한 분노 등을 반복적으로 하는 경우다. 신체적 자아(body ego)에 고착되어 성격이 조직된 성인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외부로 방출하는 방법이 매우 서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대부분 이들의 유아기시절은 자아가 성장하기 어려운 척박한 정서적 환경이라는 배경이 있다. 
 
유아기의 신체적 자아(body ego)는 스스로 외부인 환경과 내부인 신체에서 오는 고통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없기에 정서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이상화된 대상(idealized object)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일차적 양육자인 이상화된 대상(idealized object)은  유아의 연약한 자아(body ego)를 보호하며, 고통을 조절하고, 성장시키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게된다. 만약 이때 연약한 유아의 자아(body ego)가 이상화된 대상(idealized object)으로부터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이것은 유아의 자아발달을 방해하고 신체적 자아(body ego)에 고착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런경우 정신분석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과거 병든 이상화된 대상(idealize object)이 정서적으로 분리가 되어 더이상 필요없어지게 된다면, 유아적인 신체적 자아(body ego)는 건강하고 독립된 자아역할을 수행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종종 숨어있던 한 사람의 정신질환의 실체가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 치료사례를 통해 예를 들어보겠다. 우울증 치료로 정신분석치료를 하면서 죄책감, 수치심과 불안 등을 분석했던 50대의 중년 여성 환자는 세상에서 자신이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이상화 대상)이 별로 없다는 것을 정서적으로 의식화되자 타인이 자신을 이용하며 함부로 대한다는 피해망상과 공포를 갖게 되었다. 환자는 그동안 신체적 자아(body ego)로 살아가면서  병든 이상화 대상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면서 유아처럼 떼를 쓰거나 타인에게 정서적으로 매달리거나 원망하며 증오나 의존의 감정을 분출 할 수 있었다. , 환자의 신체적 자아는 스스로 감달 할 수 없었던 애정에 대한 갈망과 불안, 두려움, 공포를 이상화 대상을 통해 해결해 왔던 것이었다. 실상 병든 이상화 대상이 환자 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지만 그동안 그런 사실을 부인해 왔었다. 만약 환자에게 이상화 대상이 없어진다면 환자 자신의 연약한 자아(ego)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환자는 분석치료과정에서 이상화 대상이 현실에 없다는 것을 서서히 의식화 하면서 우울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동안 이유 없이 몸이 시름시름 앓았던 각종 증상도 없어지고 몸에 생기와 활력이 생겼으며 혼란과 무기력한 기분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연약한 신체적 자아(body ego)는 신체적인 외적 자극과 내부인 내적 자극을 스스로 처리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환자는 우울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연약한 환자의 자아가 현실에서 자극을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망상과 공포를 경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환자는 다시 건강한 이상화된 대상을 필요로 했다. 이상화 대상은 피해망상과 공포를  조절하고 통제 하기 위한 보조자아로 활용할 수 있는 장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환자는 치료사를 새로운 이상화된 대상으로써 자신의 보조적 자아로 사용했지만,  동시에 과거 보조자아로 충실하지 못했던 나쁜 이상화된 대상처럼 경험했다. 이것은 환자가 치료사를 이상화된 좋은 부모(새로운 부모)로 경험하는 것과, 과거의 가혹하고 잔인했던 이상화했던 대상(과거의부모)로 경험이 동시에 일어난 양가적인 감정이었다. 피해망상과 공포는 현실에서 이상화 대상이 없다고 느낄때 나타났고, 분노와 증오는 치료사를 과거의 가혹한 이상화 대상처럼 여길때 혼란과 함께 나타났다. 분석치료과정에서 환자의 우울증이 걷어지자 우울증을 유발시켰던 더 근본적인 실체였던 경계선적 성격이라는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경계선(borderline)이라고 부르는 정신질환은 이렇게 마술적이고 신화적인 세계관으써 정신증적인 신체적 자아(body ego),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세계관으로써 신경증적인 자아(ego) 사이의 중간영역에서 정신과 신체의 고통을 경험한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경계선적 상태에서는 환자 자신의 정신과 신체의 자극에 대한 고통을 타인을 잔인하게 투사해서 통제하고 조정하거나, 투사할 수 없을때는 대상이 없을때는 누구도 정서적으로 의존할 수 없기때문에 홀로 버림받았다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정신의 활동을 모두 마술적이고 신화적이며 주술적인 방법으로 치료했던 고대의 세계관에서는 경계선(borderline)질환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비춰졌을수도 있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이성을 강조하는 지금의 세계관에서 아직 연약한 자아 상태에 있는 경계선 성격질환을 앓으며 고통스러운 혼란과 분노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에게 불행하고 끔찍한 일이다.
 
이처럼 정신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과 인류 그리고 사회문화에 따라 변해왔다. 정신치료 또한 항상 “나와 주체, 대상과 타자” 라는 세계관과 영향을 주고받기에 실상 정신치료와 세계관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반 그리스도인은 야만인라고 생각했고, 우리나라 또한 불과200년 전에는 양반과 천민이라는 신분계급이 있었는데 이것은 당시 보편적 세계관이었다. 
 
오늘날까지 세계관은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고대의 세계관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근대의 세계관을 거쳐왔다. 그리고 최근 현대에 들어서는 영적인 세계관으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다. 사람의 정신속에 불변하지 않는 영적이며 의미있는 존재와 교감은 우리를 새로운 정신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미 고대에서 신화나 상징적으로 묘사했으나, 근대에 들어서 초경험적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agnosticism)을 주장했었다그러나 이러한 근대적 사고는 급속하게 변하는 현대 세계관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뇌의학은 이미 실체 불가능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기능을 밝히고 있고 실증과학은 초월적 현상을 연구하며 근대 세계관을 일깨우고 있다. 여기에서 정신분석의 역할은 종교와 과학 그리고 의학과 신화와 사회문화를 통합한 독특한 인간정신치료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기에, 현대의 영적세계관에서 경험되는 정신의 현상과 실체를 탐구하여 자신의 인격으로 정돈해 내는 도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자기 정신분석 심리치료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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