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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st of Survival: Psychoanalysis and Adult Onset Trauma(2002)

참자기 2014-07-28 (월) 08:42 10년전  
The Cost of Survival: Psychoanalysis and Adult Onset Trauma
Ghislaine Boulanger, Ph.D.(2002)
 
생존의댓가 : 정신 분석과 성인 발병 정신적 외상
Ghislaine Boulanger, PH,D (2002)
 
 
생존은 멸절경험과 같아서 쌍둥이 형제라 할 수 있다.
(Survival is the twin brother of annihilation.) (Winston Churchill), 1941
 
생존은 무작위적이거나 퇴행하거나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명확한 구조를 가진 경험이다.
(Survival is an experience with a definite structure, neither random nor regressive nor amoral.) (Terrence Des Pres), 1976
 
Jonah가 나의 사무실에 왔을 때, 그는 41살의 제법 성공한 사업가로 5년 동안 뉴욕에서 살고 있었다. Jonah는 갑자기 찾아오는 우울감과 평소 같지 않은 극도의 외로움에 고통 받고 있다고 그의 친구가 말했다.
18개월 전에 Jonah는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그의 고급 아파트 옥상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했었다. 저녁이 끝날 무렵에, 경찰들이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불법 거주자를 내쫓기 위해서 버려진 건물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것을 파티 참석자들은 목격했다. 경찰이 그의 빌딩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정문을 부수었고 Jonah는 그 소리를 듣고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 옥상을 빠져 나와 아래층으로 가고 있었다. 그가 4층에 도착했을 때,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수십 명의 폭동 진압 경찰이 Jonah앞에 나타났고, Jonah를 벽으로 밀쳐냈다. 몇몇은 Jonah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엎드리라고 명령을 내리며, 움직이지 말라고 고함을 질렀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어요. 그들은 제어가 불가능했었거든요. 나는 이젠 끝이야.”라고 생각했어요.”라며 그때 상황을 회상했다.
많은 경찰이 경찰봉으로 그를 가격한 후 다른 한명의 경찰은 폭동 진압용 방패로 Jonah의 머리를 내리쳤으며, 방바닥으로 내던져버렸다. 건물의 젊은 잡역부가 그의 앞으로 완전히 내던져졌을 때, 그는 자신의 아파트로 기어가길 원했고, 몸을 최대한 움츠렸다.
Jonah저는 그 광경을 계속 반복해서 보고 있어요. Fred의 눈이 공포로 가득 찼고, 총은 저의 머리를 겨누고 있죠. 잠에 들면 그들이 보이고, 낮에도 그들이 보이고, 그 광경은 계속 제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만약 누군가가 이스트 빌리지에 대해서 말하거나, 폭행의 소리라도 들으면 저는 마치 그때 그 상황이 다시 일어나는 것만 같아요.”라고 나에게 말했다.
 
Jonah가 나에게 그의 힘든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을 때, 그의 눈은 나와 제대로 맞추지도 못했고, 호흡도 눈에 띄게 얕아졌지만, 감정은 제법 평온해졌다. 그 사건의 기억은 마음의 눈에서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저는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울 수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다른 생존자로서 Jonah에게 트라우마 기억은 그 이후의 사건들로도 치유되지 않았고, 마치 시간이 거기에서 멈춘 것처럼 끊임없는 순환 고리로 그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흘러가버린 시간은 구타 사건 이후에 Jonah의 삶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저는 막다른 골목에 있어요. 이것은 마치 길을 가다가 갑작이 벽에 부딪히는 것과 같죠. 앞으로 갈수도 없고, 뒤로도 갈 수 없이 계속 벽에 부딪히는 거예요. 전에는 어떤 것이든 진행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외출도 하지 않고, ‘폭력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 그 신문조차도 읽지 않아요. TV 시청도 하지 않죠. 바뀔 수 있다는 희망도 잃고....감정적으로 망연자실하며... 영혼조차도 잃었죠.”라고 나에게 말했다.
 
Jonah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유심히 그의 말을 듣는데, 나는 갑자기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결말이 생각났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 Remarque(1928)는 제 1차 세계 대전 동안에 전쟁에서 정신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소멸되기를 기다리는 것을 묘사한다. : “우리는 피폐해지고 쇠약해질 것이며,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릴 것이다. 정처 없이 떠돌 것이며, 어떤 희망도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스스로에게도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 될 것이며, 늙어가면서 심지어는 그런 자신에게 적응해 버릴 것이다. 또 다른 몇 사람은 단지 굴복할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피를 못 잡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결국 우리는 파멸로 빠져야한다.(페이지 254.)
 
정신 분석 이론은 최근에 철학에 관련된 흐름의 변화와 새로운 이론 경향 그리고 임상 반응에 대응해서 그 내용이 더욱 정교해졌다. 하지만 정신분석가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세계관을 수용할 수 있도록 시야가 넓어지는 동안에 이론을 이끄는 헤게모니(주도권)는 점점 약해졌다. 체계적이지 않은 경험, 알려진 뜻밖의 것들, 경험에 가까운 현상, 셀프(slef) 상태의 다양성 및 성차별의 경험, 구조적인 인자, 생물학적 요소, 신경학적 요소와 문화적 요인의 복잡성은 이론 결정과 임상적 의미의 원천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 때 발생하는 트라우마의 심리효과에 대한 분야는 호기심이 가득한 불분명하고 알려지지 않은 분야로 남았다. 주변부를 제외하고 현대의 정신 분석 담론에서 성인 발병 트라우마를 찾을 방법은 없으며, 이전 병리(병의 반발 원리나 결과)와는 상관없이 Jonah에게 해당되는 현상의 이론적인 구조는 없다.
 
지난 10년에서 15년 동안에 트라우마이라는 단어가 현대 정신 분석 문헌에 사용될 경우의 대부분은 어렸을 때, 성적인 트라우마, 상실감, 자기애적 상처, 버림받는 공포, 무력감을 나타나는 아동기 트라우마나 축적(Khan, 1975)으로 트라우마를 언급했다. 비행기 추락, 생명을 위협하는 폭행, 테러 행위, 고문, 전쟁 또는 대량 학살, “불가항력의 것 등의 재앙에서 살아남는 성인 생존자는 종종 자신의 경험으로 인한 심리적인 결과를 좀 더 개방적으로 털어놓을 수 있는 비분석적인 치료 전문가나 자조 집단을 찾았다.
정신 분석가들은 대부분 그 주제에 관해서 불안한 침묵을 유지하거나 발달 정지(developmental arrests), 유아적 트라우마(infantile trauma)나 갈등에 관한 반응에 대해서 이해하려고만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어린 시절에 받는 유혹은 세월이 많이 지난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정신 분석 이론 자체가 이후에 발병하는 정신적 외상에 대한 반응의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두 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과 같다.
 
정신 분석 집단에서 트라우마의 단어의 부주의한 남용에 대해서 관심이 모아지면서, Anna Freud(1967)는 정신적 외상이 하나의 사건으로 인한 감정적 혼란이 이후 발달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과정으로 의미할 수 있는지와 트라우마의 단어가 자아(ego)와 자아(ego)의 기능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내부 혼란을 일으키는 충격과 재앙인 사건들과 따로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페이지. 238).
비슷한 맥락에서, Krystal(1978)은 발병되는 것들로 인한 엄청난 충격으로 혼란스러울 때 정신 분석에서의 빈번한 오류를 언급했다.
본 기사에서 정신적 트라우마의 용어는 Krystal(1978)재해, 재난, 강압적인 사회적 상황 등-트라우마화(traumatization)의 극단적인 상황”(페이지 1)으로서 언급한 것을 의미한다. Krystal트라우마의 전체 과정을 치명적인 트라우마이라 불릴 것이다.”(페이지 112.)라고 결론지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Holocaust)과 같은 세계적인 사건에 시달리면서 서로 다른 성공도를 보이는 많은 정신 분석가들 (Freud, 1920; Kardiner, 1969; Krystal, 1968, 1978, 1985, 1988; Cohen, 1985; Laub & Auerhahn, 1989, 그들 사이에서) Freud가 붙인 이름대로 트라우마틱한 신경증(traumatic neuroses) 문제에 대한 정신 역학의(psychodynamic) 해결책을 제공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반응들은 이론적 재구성의 정도를 필요로 하고 확장함으로서, 기존의 범주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정신 분석적 메타심리학(psychoanalytic metapsychology)의 문제로 나타났다.
폭력의 발생률이 증가하는 국내 및 국제적 추세가 급증하고 일반적인 정신 건강 분야에서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에 대한 문헌이 급증함에도 불구하고, 현대 분석학자들은 자신의 메타심리학(metapsychology) 내에서 성인의 트라우마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심지어 가장 안정적인 특성이더라도, 심각하고 지속적인 혼란을 유발할 수 있는 그 사건 자제가 왜 성인 발병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여겨지는지에 대해서 탐구하면서 정신 분석학에 대해서 도전 해보려한다.
 
베트남 참전 용사와 여성 운동 활동가 Boulanger, 1990; Herman, 1992 사이의 예상 밖으로 맺어진 연맹은 DSM III (미국 정신 협회, 1980)에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포함할 것으로 합의 했다.
그로스 스트레스 반응(Gross Stress Reaction)의 초기 진단은 DSM I(1952)에서 소개되었다. DSM I(1952)에서 이 반응은 만약에 반응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된다면, 병력, 반응들의 가역성 및 이것의 일시적인 특성과는 다르다.”라고 밝혔으며, 편집자는 본 용어는 더 확실한 진단이 설정될 때까지만 사용되는 일시적 진단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DSM II가 출판되었던 1968, 진단은 일과성 상황적 장애(transient situational disturbances)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편집자들은 만약에 증상이 스트레스가 제거된 후에도 지속된다면, 또 다른 정신 장애(mental disorder)의 진단이 나타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페이지 49) 비록 두 발행판(DSM IDSM II)에서 사람들은 명백한 근본적인 정신 장애(mental disorder) 없이도 압도적인 환경 스트레스(overwhelming environmental stress)에서 심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라고 주목했지만, 이러한 질병의 근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DSM II가 출간된 1968년에, ArchibaldTuddenham이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20년 동안 전투 참전 용사 사이에서 나타나는 스트레스 반응의 지속성을 확인한 것은 흥미로운 보충 설명이다.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posttraumatic stress reactions)에서 병에 대한 소인(predisposition)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의문은 많은 추측의 대상이었다.
역학 연구(Epidemiological studies) Grinker & Spiegel, 1948; Kadushin, Boulanger & Martin, 1981; Card, 1983; Boulanger, 1986; Bromet, Sonnega & Kessler, 1998, 기타 는 성격 유형(character type)이나 이전 정신 병리학(psychopathology)에 상관없이 나타나며, 증상 발병의 생명을 위협하는 정신 병리학(psychopathology)에 대응해서 많은 성인들에게 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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