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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ring the Unbearable: Melancholia following Severe Trauma

참자기 2014-06-20 (금) 17:49 10년전  
(2003). Psychoanalytic Psychotherapy, 17:219-240
Bearing the Unbearable: Melancholia following Severe Trauma
Joanne Stubley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은 환자를 정신분적적으로 치료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본 논문은 그런 환자가 어떻게 그런 트라우마에서 심리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그녀는 대상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다루고자 한다. 치료자는 어떤 종류의 역전이 경험을 견딜 필요가 있으며 그런 치료의 목표는 무엇인지 고려된다.
 
도입
본 논문에서 나는 심각한 외상을 경험한 한 여성과의 심리치료 만남을 묘사하고자 한다. 이 환자를 만날 때 내 마음에 자주 일어난 질문은 어떻게 그런 재앙을 살아남는가?, 어떻게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그 대답에 더 가까이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환자와의 작업 경험은 내게 심각하게 트라우마를 입은 환자가 대상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이런 식으로 사용될 것 같은가를 보여주었다. 작업에서 떠오른 역전이 감정을 견디기 위해 애쓰면서 나는 멜랑콜리의 세계로 초대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 초대는 환자가 자신의 꿈을 이용하게 되었을 때 가장 두드려졌다.
 
토마스 커넬리의 소설, 내면 바다의 여인(1992)에서 그는 젊은 여인 케이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화재로 어린 두 자녀들을 잃었다. 어떻게 인간은 – 문자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그런 깊은 트라우마에서 살아남는가는 이런 주목할 만한 소설의 중심에 있다. 충격과 내적 붕괴의 감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케이트의 첫 반응은 내리쬐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양에 자신을 노출하면서 3도 화상을 입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오지로 도망가서 자신의 이전 세상과 자신의 이전 자기를 모두 포기하고 작은 시골 마을에서 바텐더로서 일하였다. 커넬리는 자녀들의 장례식에서 그녀의 시어머니의 비난이 어떻게 그녀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는지 묘사한다.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엄마냐?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엄마야? 네가 아내였더라면! 네가 아내이자 엄마였었더라면, 내게 손주들이 있을 텐데! (Keneally 1992)
 
그녀가 피 속에 그 두려운 슬픔의 기억을 막을 수가 있다면! 그녀는 유해 탄수화물로 그것을 억제할 수 있을 텐데. 그 목소리가 시골 음식으로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 . 그리고 쭈그렁 할멈은 제멋대로 소리질렀다, ‘너는 내 아들에게 충실하지 않았어. 그래서 신이 도끼처럼 네게 내려왔어’. ‘우리는 볼 거야’, 케이트는 속으로 울면서 가슴을 숨막히게 하려고 커스터드를 숟가락으로 퍼먹고 있었다. ‘나는 신이 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좋은 일을 할거야’(Keneally 1992).
 
조용한 오지 마을에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스스로를 벌주고 점차 두꺼워진 허리둘레 밑에 보이지 않게 되려는 케이트의 시도는 결코 온전히 실현되지 않는다. 자신을 약하게 하려는 시도 속에서 삶이 끼어 있는 듯 했다. 커넬리는 마을이 가혹한 계절 홍수로부터 지켜내려고 하는 것에 대해 서술한다. 이것은 케이트의 투쟁에 대한 유사한 비유처럼 보인다. 삶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많은 관계 속에 휘말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것들 중 하나로 한 남자는 치플리라 부른 애완 캥거루를 가지고 있었다. 이 고귀하고 조용한 생물은 케이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 없으면 숨쉴 공기가 없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모든 생명과 활발함을 그것에게 투사하는 듯했다. 궁극적으로 치플리를 통해 케이트는 애도가 수반된 무엇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제 그녀는 치플리의 조용한 강렬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새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설득이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언어를 재촉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고통 속에서 단지 으르렁거릴 수만 있었다는 것을 뜻했다. 치플리라는 짐승의 부르는 소리를 통해 그녀는 이제 자신의 불행을 언어로 파내는 의무와 마주한다. 그녀는 언어에 그리고 고단한 일 즉 복잡한 정의(definition)에 매달렸다.(Keneally 1992).
 
케이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고 집으로 되돌아 가는, 상실, 슬픔, 분노와 죄책감을 다시 마주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 책의 마지막 부분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방화에 전남편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케이트가 발견하는 것에 대해 묘사한다. 그녀가 남편의 죽음을 계획했을 때 증오와 격노가 케이트의 마음을 지배한다. 운명은 다른 방식으로 그의 처벌을 가하도록 개입한다. 그녀가 어떻게 했을지 매우 궁금한 채도 남겨두지만 케이트는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의 사람들의 삶 속에서 우리를 염려하게 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 그런 트라우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충격을 수용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마음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런 엄청난 상실은 어떻게 이해되는가? 어떻게 회복하고 그 개인에게 그리고 마음의 구조에게 회복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커넬리의 문학적 서술은 그런 진짜 사건에 대해 들은 것에 바탕을 두고 있고 아마도 구경꾼으로서 우리가 그런 일을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 방식을 지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창조성을 사용하여서.
 
정신분석은 처음부터 이런 종류의 질문에 관심을 가져왔다. 트라우마에 대한 프로이트의 본래 이해는 히스테리 환자와의작업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히스테리가 매우 고통스럽고 강렬한 경험의 기억을 억압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그것의 특성과 강렬함으로 마음을 둘러싼 정상적인 보호 장벽을 깨뜨린다. 트라우마는 억압을 통해 일종의 이물질로서 마음 속에 존재하며 일상의 기능을 봉인한다. 따라서 카타르시스 치유가 치료의 목표였다.
 
그가 오이디프스 콤플렉스와 유아 환상의 중요성을 발견하면서 트라우마에 대한 생각에 극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이제 내면 세계와 심리적 현실이 그의 초점이 되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외부의 사건들은 프로이트를 특히 군인들의 트라우마 꿈과 관련하여 그에게 당면한 수수께끼와 함께 외부 요인들을 다시 재고하도록 했다. 소망 충족으로서의 꿈 이론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런 트라우마 꿈들은 프로이트에 의해 반복 강박 형태로 인식되었다. 이것은 쾌락 원칙을 넘어(Freud 1920)에서 반복 강박을 죽음 본능과 연결시키면서 설명되고 있다.
전쟁과 죽음의 시대에 대한 사고(1915a)에서 프로이트는 생존자의 죄책감 개념을 서술했고 우리의 모든 관계에서 만연된 양가감정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또한 승리감과 쾌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서술했다.
 
정신분석에서 두 가지 다른 중요한 발견으로 인해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개념이 더 명료해졌다. The Ego and the Id (1923)에서 구조 모델의 정교화는 역동적 내면 세계의 초반에 서로 갈등하고 타협하는 다른 내적 에이전시들의 이미지를 공고히했다. Inhibitions, Symptoms and Anxiety (1926)에서 프로이트는 불안을 자아 안에 확고히 위치시켰으며 불안의 원인으로서 사랑 대상의 상실이 중심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프로이트의 고전적 논문인 Mourning and Melancholia (1917)는 상실과 그 결과를 이해하려는 시도에 견고한 토대로 작용했다. 그는 멜랑콜리아의 병리적 상태와 애도 사이에 공통적인 근거를 강조하면서 시작한다. 양쪽 모두에서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사랑의 능력이 상실되고 고통스런 낙담과 모든 활동이 억제된다. 다른 말로 하면 ‘그외 모든 것을 제외할 정도로 자아를 제한하고 깊이 억제’한다. 그러나 Mourning and Melancholia에서 자기-관심이 낮아지는 것을 발견한다. 따라서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명백해진다 - 애도에서 텅비고 의미없는 것이 세상인 반면에 멜랑콜리아에서는 자아 자체가 그리된다.
 
프로이트가 묘사한 바로는 양쪽 모두 사랑 대상의 상실에 기인한 것이다. 애도의 작업은 상실의 현실을 수용하고 그 대상에게서 모든 리비도적 애착을 철수하는 것이 포함된다. 느리고 고통스런 이 작업은 기억과 기대가 시험되고 현실이 인정되며 리비도가 탈집중되는 것을 요한다. 프로이트는 그런 고통스런 심리적 작업이 수행되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기애적 만족의 총량에 따라 자아는 ... 없어진 대상에 대한 애착을 끊어내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설득된다.
멜랑콜리아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의 결과이다. 자유로운 리비도는 자아가 포기된 대상과의 동일시를 형성하면서 자아에 의해 흡수된다. ‘대상의 그림자는 자아에게 드리운다’
 
프로이트는 이런 일은 사랑 대상 및 자기애적 대상 선택에게 강렬하게 고착될 때 발생한다고 제안한다. Mourning and Melancholia (Freud 1915b)에서 대상과의 관계는 양가감정에 의해 복잡해진다. 증오는 자아에게로 향하고(자기-비난) 대상에 대한 사랑은 자기애적 동일시로 피난한다. 수많은 전쟁이 대상을 두고 일어났다. 증오는 사랑이 리비도적 연결을 유지하고자 할 때 그 유대를 분리해내고자 애쓴다. 이런 전쟁은 또한 애도에서 일어나지만 의식적 인식으로 나아가면서 어느 것도 그 과정을 중단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애도 작업은 전진할 수 있다. 경로는 본래 억압된 것에 속하는 ‘기질적 양가감정’ 때문에 멜랑콜리가 되거나 대상과 연결된 외상 경험은 다른 억압된 자료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의 이 분야에서 멜라니 클라인의 공헌은 현대의 많은 기법과 사고에 토대를 놓았을 뿐 아니라 이런 생각들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클라인은 불안은 죽음 본능의 내적 작업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라고 제안한다. 이런 불안은 두 가지 형태(paranoid-shcizoid position에 속한 박해불안과 depressive position의 우울 불안)를 띤다. 시걸(1979)이 묘사하듯이:
 
프로이트가 가정한 대상 상실에 대한 근본 불안은 클라인에 따르면 물론 두가지 조합 중의 한가지 방식으로 경험될 수 있다. 그것은 뒤돌아서 공격하는 대상으로서 편집적으로 경험될 수 있거나 우울하게 - 즉 대상이 좋은 것으로 남아 있고 불안은 나쁨에 의해 공격당하는 것 보다는 좋음을 잃어버린 것과 관련된다.
depressive position의 불안은 양가감정에서 생긴다: 유아는 자신의 증오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파괴할까봐 두려워한다. 대상을 보호하고 통제하려고 시도하면서 그는 대상을 내사한다. 그러나 그때 자신의 증오와 파괴적 충동들은 실제 외부 대상 뿐 아니라 자신의 좋은 내적 대상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낀다. 점점 통합되어 가면서 유아는 자신이 엄마를 증오할 때도 엄마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게 된다.
 
클라인이 설명하듯이 대상이 전체대상으로 사랑받을 때야 비로서 대상의 상실은 전체로 느껴질 수 있다. 그때 상실은 슬픔의 감정과 좋은 대상에 대한 열망 그리고 증오가 손상을 입힌 것에 대한 죄책감과 관심을 동반한다.
클라인 이후에 시걸, 비온 그리고 스타이너 같은 학자들은 애도에 대한 프로이트의 본래 작업을 재정의하는 데 클라인의 투사적 동일시 개념을 사용했다. 스타이너(1993)는 다음과 같이 투사적 동일시를 설명한다:
자기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 대상에게로 투사되고 그것은 대상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되고 그것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된다.
 
프로이트가 애도 작업을 대상게게서 리비로를 탈집중하는 것으로 본 반면에 투사적 동일시 개념은 애도가 대상에게로 투사되었던 자기의 그런 부분을 되찾아 오는 것을 포함한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더욱이 투사적 동일시는 분리와 상실로 인해 생긴 우울 불안을 회피할 수 있는 중심적인 방식으로 생각된다. 상실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대상에게서 자기를 구별하게 하며 따라서 애도가 진행될 수 있다.
 
Caroline Garland (1998)는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으로 두 단계를 말한다. 첫 번째는 프로이트가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는 것으로 서술한 것과 동일하며 쇼크로 특징되며 정상적인 정신 기능이 해체되는 특징이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두 가지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트라우마의 성질이 유아의 박해 불안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클라인학파의 사고를 끌어들이면서 Garland는 트라우마가 외적, 내적 좋은 대상 모두의 상실로서 경험되는 방식을 언급한다. 그때 나쁜 대상 만이 거주하는 것으로 느끼는 내적 세계에 남겨진다. 박해 불안이 만연한다.
 
둘째, Garland는 프로이트의 바인딩 개념을 가져와서 더 초기의 경험에 따라 그것을 이해하고자 애쓰면서 마음이 트라우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서술한다. 따라서 일어난 일에 대한 내적 이해는 과거의 혼란스런 사건이나 어려운 관계와 연결된다.
내가 서술하고자 하는 환자는 케넬리의 케이트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녀 역시 깊은 트라우마를 경험했고 그로 인해 그녀의 세상이 산산 조각났다. 이에 대한 그녀의 심리적 반응은 깊은 멜랑콜리아로 빠져들어가는 것이었다.
 
의뢰 The Referral
K는 인디안 혈통으로 영국에서 태어난 36세 여성으로, 공공의료기관의 간호사에게서 의뢰되었다. 1995년 3월 27일에 K의 두 아이들(아들 9세, 딸 7세)이 별거중인 남편에게 유괴되었다. K는 휘발유가 잔뜩 뿌려진 전남편의 차안에 아이들과 남편, 세 명이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전남편이 죽이기 위해 불을 붙일 때 무력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후 K는 일반의가 지역 병원에 상담을 의뢰하기 전까지 18개월 동안 어떤 서비스도 받지 않았다. K는 1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수석치료사와 만났고 수석치료사가 임신을 해서 휴직할 때 종결되었다. 이후 K는 1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남자 간호사와 만났다. 이런 기간동안에도 K는 지역 정신 보건 서비스를 통해 관찰되었고 일반의가 처방한 항우울제를 복용하였다. K와 함께 작업을 했던 이전의 치료사들은 어려움을 겪었고 치료안에서 약간의 접촉만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내가 K를 만난 것은 K가 트라우마를 겪고 4년이 지난 후인 1999년 9월이었다. 그때까지 K는 가족과 함께 살았던 자신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K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았고 오직 가족들, 그중에서도 정기적으로 집안일과 쇼핑을 돕기 위해 방문하는 어머니와 동생하고만 접촉했다. 그 집은 아이들이 돌아올 것을 위해 계속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방은 변하지 않았고 옷은 깨끗하게 세탁되어 있고 다림질도 되어 있었다. 집의 벽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집에 가져온 학교 숙제들이 모두 진열되어 있었다.
 
K는 소개하는 편지에서 메스꺼움, 두통 등의 많은 신체증상들과 우울감, 철수를 언급했고 자신의 감정들을 억누르는데 주기적으로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K는 자주 자살 생각을 표현했지만 이런 생각들을 한번도 실행하지는 않았다.
 
The History
K는 영국 동쪽 끝에서 살았던 전통적인 아시안 가족이었다. K의 부모는 모두 20대에 영국으로 이민을 왔고 K는 2세대였다. K는 남자형제 2명, 여자 형제 2명인 5남매중 중간이었다. 그녀 밑으로 1년 후에 태어난 여동생이 있었다. 아버지는 오빠들의 도움으로 가정을 다스렸다. 문화적으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K는 9살이 될 때까지 학교에 다니지 못했는데 그때 학교를 다니는 것조차도 다른 가족들은 반대했다. K는 한 살 어린 8살 여동생과 학교에 같이 입학했다.
 
영어시간에 여동생이 책상아래에 숨고 말썽을 부리는 동안 K는 교육을 받고 지식을 빠르게 습득햇다. K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서 중등교육수료증명서를 목표로 계획을 세웠다. 이런 계획들은 여자아이들을 인도로 시집을 보낸다는 가족의 결정에 의해 무산되었다. K의 나이 15세였다. 그 가족은 조금 애매한 이유들로 어린 여동생들을 먼저 결혼시키는 방법으로 전통적인 방식을 어겼다.
 
결혼 후에 자매들은 남편들과 함께 영국으로로 돌아왔고 모두 2명의 자녀를 낳았다. 상대적으로 K의 여동생의 결혼은 행복해보였다. 비록 이후의 사건들을 고려하지 않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K는 결혼생활은 어려웠다. K는 오직 2명의 자녀들에게만 집중했고 부부관계는 격해졌다. K는 분리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내버려 둬야하는 어려움들과 연결되는 아이들에 대한 헌신을 설명했다. 우선 K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온 이후에 아이들을 내버려 두는 게 어려웠고 딸은 거의 대부분 K의 침대에서 잠들었다. K는 다른 사람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이들과의 분리는 아이들이 죽기 1년 전에 아들이 주장했던 것이 유일했다. 많은 주저함 끝에 K는 버밍험에 있는 언니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것도 3주만이었고, 18일 후에 K는 아이들에게 갔다.
 
사건이 있기 18개월 전에 K와 남편은 별거했다. 이것은 남편의 물리적 학대로 남편에 대한 K의 두려움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별거 후에 K는 남편이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싸웠다. 결국 그 싸움은 아이들의 안전을 정당화하려는 K의 우려를 판사에게 종용하기 위해 법정까지 가게 되었다. 그녀는 접근을 허용하라고 명령을 받았고 그렇지 않으면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 사건이 있기까지 여러 번의 감독하에 접근 방문이 있었다.
 
The Treatment
K와 첫 번째 약속에 앞서 기본적인 질문들을 하고 초기 면담을 진행했다. K는 이것에 답변하지 못했지만 전날 늦게 약속을 확인했다. 후에 나는 K가 병원에 오기까지 런던을 가로질러 와야 하는 여정에서 CPN이 동반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후의 방문에는 여동생이 그녀와 함께 왔다.
 
K는 제시간에 도착했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내 방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려 했을 때 K는 멍해보였다. K는 젊은 아시아 여성으로 길게 날리는 검정 치마와 헐렁한 검정 셔츠로 유럽 스타일 옷을 입고 있었지만 새카만 피부였다. K는 긴 흑발에 머리를 감지 않았는데, 그것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K는 커다란 갈색 눈에 눈물이 가득 맺힌 얼굴이었다. K는 검정색 플라스틱 가방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별다른 반응없이 내 소개를 했다. K는 아주 천천히 복도 아래로 나를 따라왔고 나는 그녀가 곧 돌아갈 것이라고 여러 번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졌는지 개괄하고 우리가 다시 만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제안하면서 상담을 시작했다. 침묵이 흘렀고 그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천천히 거리감 있고 단절되게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녀는 가슴팍에서 플라스틱 가방을 꽉 쥐고 있으면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녀는 잠깐 멈춰 있다가 몇 달 동안 한번도 상담을 하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말을 이어갔다. 침묵이 흐른 후에 나는 적극적이 되어야 할 것 같이 느껴져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그녀가 아마도 이곳에 오는 게 틀림없이 먼 여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가 나를 처음으로 바라보며, ‘네, 그래요. 나는 긴 여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나는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지 않아요. 그것이 걱정돼요.’라며 ‘여기는 너무 멀어요’라고 반복했다.
 
짧은 침묵 후에 그녀는 자신은 바로 가까운 지척에서 상담했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녀가 여기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들을 내게 알려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때때로 자신의 삶이 움직이기를 원하지만 꼼짝할 수 없이 붙들려 있다고 말하며 반응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자리에서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느껴진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당신이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움직이는 것에 있어 그녀가 갖고 있던 어떤 몸부림이 이제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나는 여기서 움직이게 하고 싶어하고 당신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되기 쉽고 당신은 당신이 있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 더 수월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심사숙고 끝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점차 이 첫 세션에서 그녀는 오픈하기 시작했다. 좀 더 자유롭게 그녀의 이전 상담자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말할 때 eye contact이 증가하면서 좀 더 생동감있게 되었고 생기 넘치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방 안에 있는 또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어떤 단계에서 그녀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것은 너무 먼 길이다. 나는 보통 이렇게 오래 집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그녀에게 이것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집밖에 있는 것은 아이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 이것은 마치 그녀가 그들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나는 그녀가 아마도 어느 한 장소에서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있게 하는 어떤 것이 있으며 이것을 위협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파괴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깊이 생각에 잠기더니 이해하지 않는 그녀의 가족에 대한 분노에 대해 처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떻게 그녀가 증오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녀의 엄마와 언니는 이해하지 않고 그녀를 그냥 인정하고 잘 지내라고 밀어붙인다. 그들은 그녀가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사용했다. 그녀는 내가 그녀가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는 지에 대해 물었다. 나는 아마 그녀의 한 부분은 내가 이해하거나 도울 수 없을 것이라 두려워하지만 또 다른 부분은 이런 도움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부터 그녀를 너무 멀리 옮겨 놓으면 어쩌나 매우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나는 꼼짝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어떤 것을 하려고 했고 쇼핑하고 집 청소도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내가 다르게 느끼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오늘 여기에 와서 어떤 다른 것을 해야 할 때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그녀는 여기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우리는 그녀가 다시 와야할 수도 있는 몸부림에 대해 이야깋 한 다음에 협상(그녀가 세션 사이의 더 간격이 길어지길 주장한)을 하여 다음 약속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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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협상에 대해 나는 Ms K가 삶과 희망을 향한 가능성에 접촉하려는 그녀의 몸부림을 재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때 그것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그녀의 풍부한 내적 삶으로부터 그녀를 끌어내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잃지 않았다는 표현으로서 집에 있어야 하는 그녀의 콘크리트한 욕구는 세션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분명하게 그녀 스스로를 미라로 만드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가 통제할 수 있게 그녀에게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접촉을 제공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해 보였다. 우리는 처음으로 Ms K의 협상에 따라 2-3주마다 만났다. 나는 그녀에게 그녀는 격주에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때때로 그녀는 세션사이의 간격을 늘였다. 이것은 예를 들어 나와 정신과 의사나 일반 개업의와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것 보다 더 많이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고집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음의 세션 과정들, 특히 처음(시작)부터 명확한 것에 관해 더 말하고자 한다. 삶에 대한 Ms. K의 느낌은 이 트라우마를 중재(negotiate)하려는 그녀의 몸부림(struggle)을 말해주고 있다. 그녀의 melancholia는 잃어버린 아이들-그녀와 동일시하여 ego 안으로 들여와서 내면 세계에 살아 있는-을 애도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죽은 이와의 동일시는 활기차거나 희망적인 어떤 것을 향하게 되는 가능성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것은 실제로 삶과 죽음 사이의 전쟁이다.
 
나는 이 전쟁이 내 앞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매 세션이 시작될 때 Ms K는 약간은 흐트러져 보이는 검정색 옷을 입고 도착하곤 했다. 처음부터 눈 맞춤도 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승강기에서 나와 만난 후 그녀는 내 몇 발자국 뒤에서 유령처럼, 공허하게 내 방까지 복도를 따라 걸어올 것이다. 그녀는 의자에 푹 쓰러지듯 앉을 것이다. 길고 공허한 침묵이 흐를 것이며 나는 때때로 참기 힘들어 질 것이다. 나는 뭔가 적극적이 되도록 압력을 느끼고, 대체로 무슨 말을 해야할지 확실하지 않다고 표현하고 내가 질문하도록 제안하는 그녀에게서 내가 적극적이게 되도록 초대받는다. 이 시점에서 나는 그녀가 가 있는 것 같은 림보(지옥과 천국 사이의 세계) 혹은 반쯤 죽은 상태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가 몇 마디를 중얼거릴 때, 그 목소리는 단조롭고 기운이 없을 것이다. 나는 때때로 무력한 목격자(helpless witness)의 역할을 견디도록 요구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Ms K가 세션에서 이 상태에서 나와 나에게 말하기 시작한 특별한 방식은 그녀의 꿈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마음 속에서 한 가지 꿈이 떠오를 것이다. 그녀가 내게 꿈 얘기를 시작할 때, 그녀는 천천히 점점 더 생기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때때로 예언하는 것처럼 그녀의 꿈을 얘기했다. 나는 이것이 얼마나 많이 문화적, 종교적 신념과 연결되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충분한 설명이 아닌 것 같다고 우리는 함께 생각했다. 꿈 얘기는 마치 내가 그녀의 내면세계로 끌려 들어간 것처럼 느껴졌고 우리 사이의 접촉은 나 역시 limbo state에 들어감으로써만 시작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세션에서, Ms K는 아이들에 대해 그리고 남편이 떠난 후 18개월 동안 아이들의 삶이 어땠는지 생기있게 말했다. 이것은 그들이 행복하고 만족했던 목가적인 시간으로 묘사되었다. 나아가 그녀는 집에 있는 모든 것이 여전히 똑같다고 내게 말했다; 그녀는 아이들의 방을 빈틈없이 준비해 놓았다. 때때로 그녀는 여전히 집 안에서 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마치 아이들이 학교에서 곧 돌아올 것 같다. 나는 이 지점에서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오후 3:30분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언급했다. 그녀는 그걸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술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음 꿈에 대해 얘기했다.
죽음이 그녀의 문턱까지 왔고 그녀는 그를 영접했다. 죽음은 그녀에게 함께 가자고 했으나 그녀는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죽음은 아이들이 자기와 함께 있다고 했지만 그녀는 무시했다. 죽음은 멀어져 갔고, 그녀는 문 앞에 남겨져 숫자 18이 쓰여져 있는 현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Ms K는 그녀가 최근에 아이들의 교과서를 얼마나 훑어보았는지, 그리고 딸의 그림에서 숫자 18이 쓰인 현관문 그림을 발견했다고 자세기 야기했다. 거기에는 딸이 누군가가 그들 뒤에 있다고 써 놓은 이야기가 있었다. 여기에서 Ms K는 자신이 알았어야 했다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이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막을 수 있었어야 했다고 느끼는 듯 하다가 몇 달 전 남편을 죽였어야 했다고 맹렬하게 말하는 방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지고 있던 엄청난 죄책감의 짐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그것은 얼마 동안 그녀가 어떻게든 보아야만 했던 암시와 단서를 찾기 위해 과거를 샅샅이 탐색할 수만 있다면 하는 식으로 표현되곤 했었다.
이 두 번째 세션에서 나는 또한 Ms K의 외할머니에 대해 알게 되었다. 네 아이의 엄마인 이 여성 역시 그의 아이들 중 두 명을 잃었다. 딸은 16세에 결핵으로 아들은 18세에 자살로. 두 죽음은 같은 해에 일어났다. 이 할머니는 자신의 고독한 슬픔 속으로 철수하여 그녀의 마을에서 미친 여자 마녀로 알려졌다. Ms K의 이 여성에 대한 동시적 동일시와 이런 상태에 대한 공포는 자료에서 분명했다. 그녀는 이런 혼란으로 격노를 계속 표현하는 동안 그녀를 홀로 두지 않은 그녀의 엄마와 언니에 대해 감사를 표현했다. 나는 이것을 전이와 연결시켜 나에 대한 그녀의 혼합된 감정과 그녀가 나를 보러 오는 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연결시켰다. 나는 그녀에게 삶의 선택권을 느끼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불가능한지 느끼기 시작했다. 희망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은 그에 따른 고통, 격노, 죄책감 그리고 절망과 함께 슬픔의 수문을 열 수도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동일시의 림보 상태에 사로잡혀서 그녀 안에 안전하게 아이들과 함께 남아 있는 것이 더 낫다.
 
4회기에 K부인은 두 꿈을 이야기하면서 생생해졌다. 처음에, 그녀는 막 A-수준의 시험을 위해 앉으려는 참이었다; 그녀는 이를 위해 매우 열심히 공부했고 이 시험을 고대하고 있었다. 두 번 째 꿈에서 그녀는 부엌에 있었고 자녀들이 그 곳에 있었다. 그들은 더 어렸고 (5세 반 그리고 4세) 그들은 왜 그녀가 아버지에게 그들을 데려가게 했는지? 왜 그녀가 그에게 양육권을 갖게 했는지? 그리고 왜 그녀기 아직도 그들을 데리러 오고 있지 않은지?를 묻고 있었다. 그녀는 저항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그녀가 아버지에게 양육권을 주지 않았고 그녀가 어떻게 그들을 돌보는 것을 잊겠는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고 그 때 그녀의 몸이 불붙기 시작했고 그녀가 그를 만질 때마다 불이 꺼진다.
 
두 꿈 모두는 K 부인에 의해서 내가 그녀의 삶으로 들어가는 초석으로서 다루어졌다. 첫 번째 꿈을 통해서 그녀는 나에게 공부하고자 하는 예전의 야망과 소망을 이야기했다. 비록 그녀는 이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이 야망이 중매결혼에 의해서 끝났다는 것은 자명했다. 이와 관련해서 그녀의 자녀들에게 그녀가 느낄 수 있었던 어떤 양가감정과 관련된 죄책감을 느낄 가능성이 이해될 수 있었다. 이제 역전이에 있어서 나는 이것에 접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끼는데, 아마도 특별히 치료에서 이것이 얼마나 초기에 있는가하는 관점에서 그렇다. 두 번째 꿈에서 초기-외상의 연령에 있는 아이들의 존재는 또한 죄책감과 어떻게든 필름을 되감고 사태를 다르게 하고 싶은 그녀의 소망과 연결할 수 있었다. 나는 말을 걸었고 K 부인은 처음으로 외상으로 이끌었던 사건들의 자세한 사항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회기가 진행되면서, K 부인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함을 펼치는 느낌으로 세세하게 그 사건에 대해서 나에게 말했다. 이는 몇 달간 계속되었는데, 어떤 회기들에서는 완벽하게 이야기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는 다른 경우에는 바로 그 순간인 것처럼 그녀가 남겨졌던 곳의 두려움을 다시 시작했다. 이러한 세부사항을 듣는 것은 때때로 참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한 나의 감사함을 알았다. 나는 이것의 일부를 내 안에 담는 시간을 가졌다 마치 얼만큼은 우리가 함께 이제 이것을 겪기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K부인이 어느 정도 나를 압도하지 않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나는 느꼈다. 물론 그녀의 멈춤과 지연과 함께, 내가 이 이야기에 압도되는 것을 느꼈고 필사적으로 회기가 끝나기를 바라는 때가 있었다. 이 시기에 나는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또한 얼마나 의사소통이 되는지 놀랐다. 이 투사적 동일시는 그녀가 차를 바라보고 있고, 석유가 그녀의 샌들로 방울방울 흐르고 있고, 아들의 놀란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의 덫에 걸린 상태에서의 그녀의 무력감에 대한 투사적 동일시이다.
 
이 기간에 격주 간으로 가장 많이 만나면서 계속해서 회기들 사이의 간격에 대해서 협의를 계속했다. 좀더 긴 간격은 치료에서 일어났던 초기의 두 중단을 뛰어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내 휴가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K부인이 이것을 받아들였는지 내가 정말로 알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에 K부인은 기일을 맞아 한 달간의 기도에 들어갔고 절에 머무르는 것이 필요했다. She did not attend her sessions for six weeks. 그녀는 6주 동안 회기에 들어오지 앟았다. 그녀가 획기에 돌아왔을 때 나는 그녀에게 내 여름휴가를 내주어야할 필요를 대면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즉각적으로 안도감을 표현하며 반응했는데 그녀가 말하기를 그녀는 내가 떠나려한다고 그녀에게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녀는 그 회기의 나머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에 그녀의 다양한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 자녀들에 대한 생각, 기억 그리고 essence와 함께 집에서 머물기 또는 세상과 접촉하기. 그녀는 그녀가 집을 떠났을 때의 그녀의 불안, 살기위한 그녀의 투쟁이 아이들을 가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그녀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그녀가 자녀들과 함께 살았던 그녀 내부의 세상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으로서 나와 접촉을 유지하는 것에 그녀가 저항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전이로 받아들였다. 그녀가 나와 가졌던 진정한 연결에 주목하면서 내가 없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졌을 때 나는 중단이 이 딜레마를 보다 심오하게 그녀의 문에 들여놓았다고 느꼈다. 나는 이제 이 증단 후에 짧게 일어났던 회기에 대한 보다 자세한 장면을 제시하려고 한다. K부인은 제 시간에 왔다, 그리고 진한 청색 면 셔츠를 입고 청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 처음에 나는 그녀가 온통 검정색을 입은 것으로 보았다. 나는 승강기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K부인이 나타났던 4층으로 돌아오기 전에 5층으로 가는 것에 주목했다. 그녀는 나를 따라서 천천히 방으로 내려왔고 나는 다시 왠지 도중에 그녀를 잃어버린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앉았고 나는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내가 희미한 미소를 상상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멈춤이 있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무엇을 이야기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빠르게 말했다. 매우 밋밋하게 말해지고 나서 또 다른 멈춤이 이어졌다. 나는 이것이 거의 우리의 일반적인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녀가 자신만의 다음 단계를 취할 수 있을지를 보기위해서 얼마간 기다렸다.
 
결국 나는 그녀가 의미하는 것이 그녀늬 마음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말들을 찾을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마음에 있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나는 그녀가 들은 것이 나의 말들인지 아니면 단순히 어떤 접촉을 하고자하는 나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깨우려 노력하는 것처럼,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보려고 좀 더 애쓰는 것이라고 했다. 멈춤이 있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이것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 그녀는 갑자기 좀 더 많이 활기 있고 생기 있어 보였다 : 정말로 신기한 어떤 것이 일어나고 있다고 그녀가 말했을 때 그녀의 목소리의 밋밋함은 사라졌는데 이는 예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어떤 것이 그녀에게 떠올랐을 때 그녀가 그녀의 침실에서 어떻게 있었는지를 묘사했다. 그리고 그녀는 모든 장소를 때려 부숴서 박살을 내고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이것이 꿈에 관여했다. 하나의 꿈은 13살 먹은 십대의 그녀의 딸에 관한 것이었다.그녀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아름다웠다. 그녀의 딸은 그녀에게 ‘괜찮아요. 엄마. 우리는 버밍엄에 있었어요. 엄마가 그리워했건 것을 보세요. 제가 자란 것을 보세요.’ 라고 말했다.
 
K부인은 그녀는 이런 종류의 /꿈을 예전에는 결코 꾸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보통은 그들은 그녀에게 ‘엄마, 와서 저희들을 데려가 주세요’ 그리고 ‘엄마, 왜 아빠에게 양육권을 주셨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것과 달랐다.
 
두 번째 꿈에 대한 이야기가 즉시 이어졌다. 그녀가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의 이웃이 그녀를 그리고 그녀의 집을 불태우려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 구역을 불타게 했고 그녀가 아무리 그녀를 붙잡으려 해도 그녀는 계속했다.
나는 이 자료에 의해서 밀려들어오고 압도되고 생각하는 것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솔직하게 나에게 이해하는지를 물으면서 앞을 보고 앉는 것으로 끝냈다. 그녀는 이제 활기차고 생생했으며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 자료에 대해서 어떤 희망이 있다는 느낌을 느꼈지만 이것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녀가 마음속의 어떤 새롭고 다른 사건에 대해서이야기하고 있고 그녀가 이 사건이 놀랍지만 몹시 흥미롭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빠르게 동의했다 - 그녀는 침실에서의 이 사건으로 인해 매우 놀랐다. 그녀는 그녀가 물건들을 린넨 벽장에 넣어치우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계속 글러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성가시다고 느꼈고 그런 다음 자신이 모든 것을 파괴시켜버리고 싶은 마음에 얼마나 몰두되어있는지를 발견했다. 그녀는 무엇엔가 매달려있다고 느꼈고 자신을 출구로 나가게 하기를 원했다.
 
내가 반응을 하기 전에 다시 그녀는 이번에는 첫 번 꿈에 대해 말하면서 이것이 다른 꿈들과 어떻게 다른지 강조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딸이 미니스커트 입은 것을 보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그녀는 항상 딸에게 미니스커트를 입히려고 시도했지만 딸은 입고 싶어하지 않았다. Ms K는 그렇게 할 수 없었고 미니스커트를 입을 만한 다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딸이 나온 마지막 장면은 딸을 위해 산 아메리칸 스타일의 코트와 미니스커트 한 벌이었다. 그녀의 딸은 그 옷을 결코 다시 입지 않았지만 아주 아름다워보였다. 꿈 속에서 그녀는 사랑스런 긴 다리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말하기를 ‘좋아. 우리는 버밍햄에 있었어.’ 버밍햄은 그녀가 아이들과 떨어졌던 - 그들이 Ms K's sister 와 함께 머물려고 갔을 때- 바로 그 시간과 장소라고 설명했다. K는 분리가 견딜수 없고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일주일 일찍 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오늘 파란 옷과 이것의 반복은 새롭고 다른 것이라는 점 그리고 꿈에 대한 연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나는 희망적인 생각을 갖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 아마도 이는 K가 멜랑꼴리아의 치명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죽음을 넘어 삶을 선택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녀에게 어쩌면 우리가 이전에 꾼 꿈들-죄책감과 비난받는 다고 느꼈던-로부터 ‘좋아It's alright’라고 말하는 그녀의 딸에게 희망과 약속을 주는 꿈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모습으로 수긍했다; 잠시 멈추었다가 그것은 그녀가 다시 그들과 있게 될 것이라고 들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그녀는 나에게 미소를 보여주었고 나는 오싹해졌다. 나는 마치 그녀의 마음 속에서, 죽는 것은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버밍햄으로 가는 것과 같을 거라는 듯이 그녀가 죽음에 대한 자신의 욕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를 빤히 쳐다본 뒤에 강한 어조로, ‘나는 언제나 죽음을 생각한다. 나는 침대에 누워 내가 죽기를 소망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본다.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고 나는 뼈만 남을 때까지 썩어 단지 거기에 해골이 누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내가 아직 여기에 있네. 왜 내가 여기에 있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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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즐거움과 흥분으로 이 말을 하는 동안에 나는 점점 무서워지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녀에게 반박하고 싶고 어떤 점에서는 이것은 끔찍한 것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설득하고 싶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그녀가 얼마나 강력하게 죽음에 끌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그것에 사로잡혀있는지를 내게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동의하면서 약간 기분이 상해보였다. 잠시 침묵이 흐렀고; 나는 다른 꿈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별거 후에 분명히 Mr. K의 편을 들면서 Ms. K와 말을 하지 않았던 옆집 여자에 대해 한참 이야기 했다. 그 이웃은 Ms K에게 몰래 접근하여, 집에 있는 Ms. K를 지켜보고 Ms. K의 정원에 쓰레기를 던졌다. 한번은 그 이웃은 창문을 깼고 Ms. K는 경찰을 불렀다. 그녀는 이웃에게 협박당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이것을 Ms. K의 꿈에서 불을 끄기 위해 싸우는 이미지와 연결했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인가를 살아있게 하기 위해, 살기 위해 싸웠던 그녀의 일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 보였고 맞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두 부분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때로는 그녀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나는 아마도 이것은 삶을 위해 싸웠고, 그녀의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 그녀에게 어떤 것 같은지 기억할 수 있는 그녀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웃었고 트라우마 당시에 대학과정을 밟고 있던 것에 대해 잠시 말했다.
 
한 동안 긴 침묵이 이어졌고 그것은 아주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다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는 ‘나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 부재를 깨닫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야기다.
비록, 분명히 이 세션에서 많은 측면들이 있었지만, 나는 전이에서 내면의 투쟁이 명확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멜랑꼴리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K의 소망은 즉시 죽음의 댄스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뒤따랐다. 나는 그녀가 미라화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아주 잠깐 느꼈지만 희망은 산산조각나고, 그녀의 자살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만이 남겨졌다.
 
이것은 치료내에서 수없이 많이 재연되었다. 나는 이 환자에게 희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궁금해졌다. 나는 분석가가 “기억이나 욕망 넘어에” 있어야 한다는 비온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Ms. K에게 최소한 이 순간에는 멜랑콜리가 애도를 직면하는 것 보다 더 낳은 옵션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희망의 내 환자에 대한 욕망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역할은 그녀를 이해하고, 이해받는 경험을 그녀에게 제공하려고 느력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것은 내 역전이에서 때로는 압도되는 절망감과 그녀의 가학적이고 파괴적인 충동이 촉발할 수도 있는 고문을 다루도록 하고 있었다.
 
다음 해에 Ms. K는 가끔 결석하면서 세션에 참여했다. 이 시기 동안 그녀에 대한 나의 느낌은 이런 투쟁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삶을 허락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그 대가는 얼마나 엄청난 것일까-자녀를 잃고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직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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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아이들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는지 묘사하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문이었다. 나는 그녀가 그들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녀가 죄책감을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녀는 이런 해석에 바로 동의했고 종종 그녀의 꿈 중에 하나가 뒤따랐다. 특히 생생한 꿈은 치료 시작 18개월 경에 나에게 가져왔다.
 
거기에는 전쟁 또는 전투가 있었다. K와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가 죽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 그녀는 양쪽 팔에 하나씩 옮기고 있었다. 그녀는 이 다른 사람을 보았고 그들은 모두 매우 슬퍼했다.
나는 이 꿈은 K가 직면했던 내적인 세계를 나타냈다고 느꼈다. 그 트라우마는 내면에서 핵무기가 폭발하는 것과 같았고 그녀의 좋은 대상들이 모두 파괴되었고 그녀의 세계는 산산조각 났다. 그녀의 죽은 아이들과의 동일시로 인해 그녀는 필사적으로 아이들을 지키고 그들을 상실한 현실을 부인하려고 하면서 그들을 이 세계로 데려오고자 하였다. 나는 그 꿈에서 그녀 옆에서 이런 삭막하고 황량한 세계를 조사하고, 그녀가 있는 곳에서 슬픔을 인식하는 그 다른 사람이 내가 아닐까 궁금해졌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꿈을 사용하여 나를 내면으로 어떻게 밀어 넣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녀의 내면 세계를 직접 경험하도록 했는지에 대한 나의 느낌과 확실히 연결되었다.
 
이 시기에 나의 역전이는 계속 목격을 증언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는 것, K가 살아남을 수도 있는 희망적인 느낌과 이런 희망은 부숴지고 죽음을 향해 끌리면서 실제로 삭제되는 것 사이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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