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ad Mother Syndrome and the Reconstruction of Trauma, From The Dead Mother
죽은_어머니_증후군__dead_mother_syndrome_과_외상의_복원.docx
38.2K 0 10년전
The Dead Mother Syndrome and the Reconstruction of Trauma, From The Dead Mother : The Work of Andre Green, pp. 87-86. / Arnold H. Modell. / 번역:신원일
죽은 어머니 증후군 (dead mother syndrome)과 외상의 복원 / Arnold H. Modell
앙드레 그린 (Andre Green)의 논문 '죽은 어머니' (Green, 1983)는 유아기와 아동기 초기에 어머니와의 관계의 외상적 붕괴에 대한 아동의 반응을 보여주는 패러다임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 논문은 과거의 복원 및, 유아기와 아동기 초기에 일어난 외상 간 관계, 그리고 이후 정신병리학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론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따라서 죽은 어머니 증후군 (dead mother syndrome)은 정신분석의 이론 및 실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본적 이슈들을 해명하는 모델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기반을 통해 우리는 외상의 인식론과 복원의 문제를 탐구할 수 있다.
죽은 어머니 콤플렉스 (dead mother complex)와 죽은 어머니 증후군 (dead mother syndrome)을 구별하는 것은 유용할 수 있다. '죽은 어머니 증후군'이란 용어는 죽은 어머니와의 정서적인 일차적 동일시가 존재할 때, 그린 (Green)에 의해 기술된 강렬한 악성적 임상 증후군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죽은 어머니 콤플렉스'는 만성적으로 우울하고 정서적으로 무감각한 어머니에 대한 개인적 반응의 전체 범위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유명한 논문 '파비안과 위니코트에 대한 내 자신의 분석 경험'에서 건트립 (Guntrip)은, 정서적으로 무감각한 우울한 어머니를 두고 있으면서도 죽은 어머니 증후군의 고통을 당하지 않았던 위니코트 (Winnicott)의 경험을 복원하였다 (Guntrip, 1975).
그는 정서적 무감각 (어머니와의 동일시)을 일으키지 않지만 정신분열증 상태에 대한 과민증으로 이끄는 죽은 어머니 콤플렉스로부터 고통을 받았다. 간단히 말하면, 죽은 어머니 콤플렉스를 가진 모든 사람은 죽은 어머니 증후군을 일으키지 않는다. 유아나 아동에 대한 어머니의 정서적 철회는 상대적으로 흔하게 일어나는 반면, 심각한 정신병을 시사하는 죽은 어머니 증후군은 매우 드물다. 정서적으로 무감각한 어머니에 대한 개인적 반응의 가변성은, 외상에 대한 개인적 반응 내 선택적 과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나는 선택 (selsction)이란 용어를 다윈주의의 의미에서 사용하는데, 여기서 선택은 의식적인 자발적 선택을 의미하지 않는다.
죽은 어머니 증후군의 현상학
죽은 어머니의 내면화 (internalization)를 기술할 때, 앙드레 그린은 어머니에 대한 환자의 구성이나 내적 표상을 가리키기 위해 이마고 (imago)라는 용어를 신중하게 사용하였다. 이마고는 과거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항상 같은 것은 아니며, 무의식적 동일시를 지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어머니의 문제는 용어 '이마고'의 사용을 완전히 비껴갈 수 없다. 죽은 어머니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죽은 어머니의 연관성과 정서적 상태를 복원하는 문제는, 분석가들인 우리가 우리 환자의 이마고들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더 복잡해진다. 그러한 교감적 동일시는 치료 과정의 필수 요소이다. 우리는 환자 정신병의 원인이 되는 환자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를 상상한다.
만약 우리가 명백한 정신병 환자들을 제쳐둔다면, 죽은 어머니 증후군은 분석가가 마주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치료적 문제들 중의 하나로 남는다. 나는 그린에 의해 묘사된 죽은 어머니 증후군의 두드러진 현상학적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중요한 측면에서 내 자신의 경험은 그린의 경험과 달라진다. 자신의 성공적인 분석에서 그린은, 우울증을 겪기 전 어머니의 생기 넘친 모습에 대한 기억들이 환자에 의해 복구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내 자신의 사례는 다소 다른 시나리오를 제안한다. 어머니의 생기 없음 (deadness)은 처음과 끝을 가진 개별적 에피소드로 경험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생기 넘치는 기간에 대한 기억들을 복구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복원한 환자의 관점에서 볼 때, 어머니는 한정된 기간 동안 우울증의 고통을 당한 사람이 아닌, 영구적으로 성격적 결함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례에 따라 내 환자들이 항상 어머니의 우울증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사례에서 분석가는 어머니가 실제로 우울증에 빠졌고 정서적으로 무감각했다는 사실을 복원해야 한다. 이것은 중요한 치료적 성과를 가지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환자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들만의 결함이나 나쁨으로 인해 그들로부터 멀어졌다고 계속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례의 경우, 어머니는 자식이 그녀 자신과 분리된 내적 삶을 가졌음을 인식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었던 것으로 경험되었다. 아이의 내적 삶을 인식할 수 없는 어머니의 무능력에 대한 경험은 매우 파괴적일 수 있다. 이것은 환자들의 어머니가 그들의 인간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만약 어머니가 환자들의 심리적 생기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녀가 그들의 존재하지 않음이나 실제적 죽음을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만약 자식이 어머니의 삶과 분리된 고유한 내적 삶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식에게 사람이 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과 같다. 자식은 자신의 심리적 생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무능력을, 그의 존재를 허가하는 것에 대한 그녀의 철회로 느껴질 수 있다. 존재에 대한 허가가 어머니에 의해 철회한다는 믿음은 모든 욕망이 금지된다는 확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존재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면 자신을 위해 어떠한 것도 바라거나 욕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상적으로 적절한 아기를 형성하기 위한 한 방식'이란 논문에서 다니엘 스턴 (Daniel Stern)은 자신이 유아기 동안 위에서 제시된 것과 유사한 상태를 기술할 때 그린의 죽은 어머니 개념에 의해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한다. 그는 어머니를 활기 넘치게 만들기 위한 시도의 실패로부터 발생하는 유아의 '경미한 우울 (micro depression)'을 관찰하였다.
유아의 기대 및 열망과 비교되는 우울한 어머니의 얼굴은 납작하고 표정이 없다. 그녀는 눈맞춤을 중단하고서 다시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우연적인 반응은 적어진다. 그녀에게서 활기와 긴장이 사라진다. 어머니로부터 나오는 이러한 불변요소들은 유아에게 자극과 반향을 일으키는 요소들 – 활기의 사라짐, 자세의 수축, 긍정적 정서와 얼굴 표정의 저하, 활동의 감소 등 - 이다. 요약하면 이러한 경험은 '경미한 우울'로 기술된다 (Stern, 1994, pp. 12-13).
어머니의 무반응이 일으키는 파괴적 효과는 트로닉 (Tronick, 1989)의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계속해서 스턴은 '유아가 어머니를 활기 넘치게 만들거나 정서적으로 함께 있거나 함께 놀이를 하도록 초대하고 간청한 후, 그녀와의 동일시와 모방을 통해 그녀와 함께 있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1994, p. 13). 이러한 관찰은 그린의 보고 – 즉, 그의 환자들이 무감각한 어머니와의 일차적 동일시로부터 고통을 받았다 - 와 일치한다. 이것은 환자가 다음처럼 말하는 것과 같다: ['만약 내가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그녀가 될 것이다'].
나는 여성 환자들에게서 이처럼 어머니와의 총체적 (일차적) 동일시가, 죽은 어머니 콤플렉스와 구별되는 죽은 어머니 증후군의 현저한 특징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많은 환자들은 역-동일시 (counter-identification)를 통해 즉, 그들이 어머니의 정반대가 되거나, 자신들의 '일부'가 죽었다고 믿음으로써 개인성의 감각을 유지하고 자아/대상 구별을 유지함으로써 죽은 어머니 증후군을 피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차적 동일시 (primary identification)의 경우에, 환자는 자신에 의해 구성된 어머니 속에 잠기기 때문에 그의 개인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어머니 개성의 이러한 구성은 내면화로 이루어지는데, 다시 말해 어머니의 의식적인 특성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 의해 경험되는 어머니의 무의식적인 특성들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선한 사람'으로 보이는 어머니는 딸에 의해 증오로 가득 찬 사람으로 인식되는데, 주지하다시피 환자는 어머니의 이처럼 추정된 측면을 동일시하면서, '선한' 척 하지만 그 심층에는 증오를 느낀다. 이것은 일종의 역설적 과잉보상 (overcompensation)이다: 어머니는 딸의 내적 삶을 무시하지만, 역으로 딸은 자신에 의해 어머니의 무의식적 태도로 인식된 것을 자신의 모델로 삼는다. 사랑할 능력이 없는 무감각한 어머니와의 이러한 총체적 동일시는, 자신과 타인들을 사랑할 수 없는 환자의 무능력을 촉진시킨다.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죽은 어머니 증후군의 또 다른 현상학적 측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유아기의 어머니/유아 관계나 아동기의 어머니/아동 관계에서 일어나는 장애는 정서를 조절할 수 없는 상대적 무능력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유아기에 항상성 과정들 (homeostatic processes)이 상호 조절된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Beebe et al, 1997; Shore, 1994). 정서 조절의 이러한 장애는 어머니/아동 관계의 일반적인 비동시성 (asynchrony)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은 어머니가 아동의 불안을 담는 용기이자 최초의 처리자라는 비온 (Bion)의 이론과 일치한다.
본래 제어할 수 없는 정서로 인해 자아가 넘치거나 압도당한다는 믿음에는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관찰된다. 만약 어머니가 정서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녀가 자신의 육체와 육체적 경험을 멀리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자아와 육체 간의 이러한 단절은 아동에게 전달될 것이고, 따라서 어머니가 정서적 경험에 대한 아동의 처리 능력을 발달시킬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앞서 내가 주목한 것처럼, 정서 처리의 이러한 장애는 죽은 어머니 증후군의 일부분이다. 나는 이 증후군에 수반되는 불변요소를 의심하지만, 이 요소는 폭넓은 범위의 장애들에서도 나타난다. 죽은 어머니 증후군에 고유한 것은, 쾌락을 경험할 수 없는 무능력이다. 이것은 고통을 추구하는 피학적 충동으로 이해되는 것과 다르다. 쾌락 자체 즉, 단지 살아 있음에 대한 쾌락이 없는 상태이다. 경우에 따라 어떠한 원천에서도 나올 수 있는 쾌락은 (아무리 순수하더라도) 금지된다. 만약 쾌락이 불가피하게 경험된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
스턴 (Stern)은 죽은 어머니 문제에 대한 사고에서 (내가 보기에) 매우 유용한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는 '함께 있음의 스키마 (schema-of-being-with)'에 대해 말한다 (Stern, 1994). 이것은 우울한 어머니와 함께 있는 유아의 주관적 상태에 대한 추론적 관계 스키마 (relational schema)이다. '함께 있음의 스키마'란 용어는 정적이고 일차원적 용어인 표상 (representation)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지며, 연관성 (또는 비-연관성) 상태의 내면화인 역동적 상호작용을 개념화시키기 위한 의도를 가진다. 이 스키마는 교란된 어머니/아동 관계로부터 발생한 만성적 외상을 위한 패러다임으로 사용될 수 있다.
'함께 있음의 스키마'는 발달적 장애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성인 환자에게서 전이의 측면들을 사고하는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죽은 어머니 증후군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환자들은 '타인과의 함께 있음'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린이 '환자가 분석가보다 분석에 더 강한 애착을 느낀다'고 말했을 때, 그는 바로 이러한 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Green, 1983, p. 161). 환자들은 분석가와 함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린이 관찰할 것처럼, 그들이 분석 자체에 매우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분석가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마저 위험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분석가에 대한 어떠한 애정도 위험스러울 뿐만 아니라 잠재적 파괴성을 가진 것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그들은 분석적 상황에서 죽은 듯이 있거나 무생물이 된다. 그들은 시체와 같은 자세를 유지한 채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으며 모든 정감이 배제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러한 생기 없음은 전염성을 가지면서 분석가를 감염시킬 수 있는데, 이로 인해 분석가는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죽은 어머니는 전체 분석 과정을 지배하는 유령이다.
복원 (reconstruction)의 문제
정신분석적 복원과 그 병인론적 함의의 타당성이나 진실에 대한 문제들은 정신분석의 태동 이후로 우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거주하는 지적 과학적 환경은 지속적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관련 논쟁은 정적이지 않다. 프로이트에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정신분석이 자양분을 흡수했던 인접한 과학들은 변화와 변형을 거쳤다. 예를 들어 뇌는 이제 일직선적 결정주의와 직접적 인과관계의 원칙들이 적용되지 않는 자기 조직적 시스템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유아기 동안 우울한 어머니를 경험한 것과, 성인이 되어 죽은 어머니 증후군의 발달을 경험하는 것 간에 직접적이고 일직선적이며 결정론적인 관계가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유아기와 아동기 초기에 일어나는 개인적 경험과 성인기에 일어나는 죽은 어머니 증후군의 경험 간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동기 초기의 이러한 경험은 성인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복원될 수 있는가?
늑대인간에 대한 프로이트의 사례연구 (Freud, 1918)는 정신분석적 복원의 전형적인 예로 여겨지고 있다. 혹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 사례는 정신분석적 복원의 타당성을 보여주는 반면, 다른 혹자에 따르면 정신분석에서 과거를 복원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Spenc, 1982). 그렇지만 프로이트 분석 사례에서 복원되었던 외상 – 즉, 원초적 장면에의 노출 – 은 확실히 죽은 어머니 증후군에서 경험된 외상과 유사하지 않다. 늑대인간에서 외상은 한 사건으로 구성되지만, 죽은 어머니 증후군에서 외상은 정서적 상호작용의 지속된 부재로 구성된다. 이 두 외상의 인식론적 상태는 매우 다르다. 원초적 장면이 늑대인간에게 노출되는 사건은 적어도 잠재적으로 제 3자에 의해 관찰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정서적 작용이 없는 어머니에 대한 아동의 내적 반응은, 비록 우울한 어머니에 대한 유아의 행동적 반응이 관찰될 수 있지만, 제 3자에 의해 확인될 수 없는 사적인 경험이다. 유아에 대한 직접적 관찰에 따르면, 생후 10개월이 되었을 때 우울한 어머니에 대한 유아의 정서적 반응은 이미 정상적 유아의 정서적 반응과 다르게 조직된다 (Beebe et al, 1997).
뿐만 아니라 유아에 대한 직접적 관찰을 통해, 어머니가 겪는 우울증이 유아에 미치는 전염적 효과가 확인되었다.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의 유아와 정상적 어머니의 유아 간에 구별되는 행동적 생리학적 증거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우울한 어머니의 유아들이 보이는 EEG 패턴이 변경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Davidson and Fox, 1982). 유아에 대한 이러한 관찰은, 우울증을 겪고 정서적 교감이 없는 어머니가 아동의 후속적 발달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성인기 동안 정신병의 발병에 기여한다는 가정을 입증한다. 비판가들은 유아 연구의 발견들이 성인의 정신분석에 직접 적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인 정신병을 위한 인과적 설명으로 제공될 수 없다고 반박할 수 있다. 우울한 어머니의 유아와 성인 정신병 간의 연관성이 단지 유추에 불과하다는 피터 울프 (Peter Wolff, 1996)의 주장처럼, 일부 비판가들은 성인 정신분석에 대한 유아 연구의 관련성을 전적으로 부정한다.
오늘날 일부 정신분석가들은 역사적 복원에 대한 프로이트의 믿음을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프로이트는 아동기 경험의 역사적 진실이 분석가의 영향으로부터 독립될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프로이트의 관점에 따르면, 분석가의 구성이 환자에 대한 분석가의 판타지 (즉, 분석가 자신의 콤플렉스로부터 나오는 판타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분석가가 다양한 소스로부터 통일된 설명을 발명하기 위해 소유해야 하는 위대한 독창성을 평가절하한다 (Freud, 1918, p. 52). 분석가의 암시적 영향으로부터 분리된 진정한 역사적 복원이 가능한지에 대한 회의가 일부 분석가들에게서 일어나면서, 프로이트에 의해 반박된 비판이 오늘날 다시 등장하고 있다.
정신분석에서 복원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개인적 과거의 진실이 알려질 수 있는지에 의문을 품는다. 도널드 스펜스 (Donald Spence, 1982)와 로이 샤퍼 (Roy Schafer, 1983)가 주장한 것처럼, 오직 내러티브 진실만 존재하지 역사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논리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오직 논리만에 기반한 주장을 의심해야 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금세기 초반에 철학자들이 논리적으로 주장한 내용 즉, 의식적인 것만이 정신적으로 기술될 가치를 가진다는 주장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스펜스와 샤퍼의 주장에 따르면, 역사는 오직 역사적 관찰자의 눈을 통해 알려질 수 있기 때문에, 환자 과거의 복원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개인의 역사는 불가피하게 관찰자의 해석으로 환원된다. 분석가로서 우리가 수행하는 것은 과거를 발견하거나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구성하는 것이다. 만약 과거가 '객관적으로' 알려질 수 없다면, 분석가는 오직 그러한 사건들에 대한 그 자신의 구성만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적 복원에 기반한 해석은 단지 분석가의 제안에 불과하다. 해석은 분석가 내러티브의 일부분이며, '우수한' 해석은 단지 분석가의 내러티브와 환자의 내러티브 간의 우수한 적합성을 지시한다. 로이 샤퍼의 주장에 따르면, 정확한 해석은 분석가에게 불가능하다. 분석가는 단지 환자에게 대안적 스토리라인을 제공하고, 환자의 내러티브를 분석가의 내러티브로 대체한다 (Schafer, 1983). 죽은 어머니 증후군에 함축된 어머니/아동의 초기 상호작용에 대한 정서적 기억의 지속적인 영향력은, 이러한 견해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 된다.
의식적인 회상의 부재에서 초기 정서적 기억들의 지속적인 영향력은 최근의 기억 연구로부터 입증되었다. 연구 조사는 유아기 기억상실이 등록의 문제가 아니라 회상의 문제라는 관점을 입증한다 (Le Doux, 1996). 우리는 서술적 기억이 부재하는 유아기 기억상실이 약 2살 6개월까지 지속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유아 연구가들은 유아들이 보모와의 정서적 상호작용은 기억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Beebe et al, 1997). 그렇지만 이러한 기억들은 여전히 묵시적으로 남는다. 다시 말해 그 기억들은 볼라스 (Bollas)에 의해 명명된 '알려진 반사고 (unthought known)'이다. 이 발달 기간 동안 서술적 기억의 부재에 대한 이유는, 해마 (hippocampus)의 느린 성장에 기인한 것이다. 서술적 기억은 해마에 의해 중개되는 반면, 묵시적 기억은 이와 다른 시스템들에 의해 중개된다. 신경과학자들은 해마가 다른 뇌 구조보다 더 느리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관찰하였다 (Le Doux, 1996).
아동기 외상의 진정한 상태를 평가할 때, 우리는 미국에서 대중언론에 의해 널리 관심을 받고 있는 주제를 다루게 된다. 육체적 성적 학대를 당한 희생자들의 외상적 기억의 진실에 대한 뜨거운 논쟁 – '기억 전쟁'으로 불린다 - 이 벌어졌다. 그러한 학대에 대한 기억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는 것은 희생자들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 학대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에도 학대가 있었다고 주장하거나, 환자의 모든 판타지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순진하고 미숙한 치료사들의 운동이 생겨났다. 다른 한 편에는, 기억 자체가 그렇게 신뢰할 수 없다면 아동 학대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부당하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상상과 판타지로부터 기억을 구별하는 방법 – 이것은 고대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였다 – 은, 프로이트가 일부 사례에서 환자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판타지를 들었을 때 유혹이 일어났다고 잘못 믿음으로써 직면했던 문제였다. 늑대인간의 사례연구에서 그는 정반대의 주장을 전개한다: 늑대인간의 외상은 상상이나 판타지의 결과가 아니라, 실제 사건 – 배경으로 작용한 부모의 상호작용 - 에 대한 노출의 기억이었다. 어머니에게 삽입하는 아버지에 대한 목격은 늑대인간의 거세 불안을 강화시켰다. 다시 말해 부모의 성적 행위는 아버지의 성기가 어머니의 질 내부에서 없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 사례에 대한 논의에서 프로이트는 외상적 기억들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매우 균형 잡힌 관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전의 무의식적 회상이 항상 진실이라는 점이 반드시 뒤따라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회상이 진실일 수 있지만 종종 진실로부터 왜곡되어, 상상적 요소들과 혼합된다' (Freud, 1918, p. 51). 늑대인간의 첫해와 반생까지 거슬러 올라간 프로이트는, 흰색 늑대들에 대한 아동의 악몽으로부터 원초적 장면의 연대기를 복원하였다. 이러한 복원은 늑대인간의 첫 생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어느 여름 늑대인간이 말라리아 공격으로부터 고통을 당함으로써 부모의 침실에서 잠을 자게 된 사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앞서 내가 주목한 것처럼, 어머니와의 정서적 상호작용에 대한 기억의 진실한 상태는 이와 다른 순서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그러한 정서적 기억이 과거에 대한 환자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환자 혼자의 경험이며, 그러한 경험의 진실에 의문을 품는 것은 일관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머니가 우울증을 겪었고 정서적으로 무감각했는지는 외부의 관찰자들에 의해 확인되거나 확인되지 않을 수 있으며, 어머니 자신에 의해 확인될 수 있다. 한 사례에서 딸로부터 질문을 받은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이 딸의 출생 이후로 우울증을 겪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그녀는 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