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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및 수필

무한쾌락

참자기 2013-11-08 (금) 14:55 10년전  
젊은 날 타인 고통스러운 마음을 돌보겠다고 임상(치료)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후 현재 내 모습이 있기까지 뒤를 돌아보면그 동안의 정신치료(개인분석) 경험은 나의 무의식에 감춰둔 불안과 욕망 그리고 갈등과 행동들을 성찰하는 것이었다독서, 토론 혹은 사색 등을 통해 홀로하는 성찰과 정신분석을 통한 성찰의 큰 차이는 관계라는 경험 속에서 체득되는 독특한 영역의 내용들이다이러한 통찰들은 결국 나를 반추하는 거울이며 스승으로써 나의 삶의 방향성과 의미를 되새김질하도록 작용한 셈이다
 
나는 개인분석을 받아가면서 동시에 수많은 정신분석학자와 철학, 종교, 기타 인간 이해를 연구한 학자들의 진지한 숙고와 통찰을 탐닉하면서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무의식적 갈등과 고통이 해결 되는 달콤한 순간들을 종종 맛보았다그때는  마치, 어린시절 잃어버린 그리웠던 부모(나의 일부분으로써 균열된 정신의 영역)의 한 조각을 만나는 것처럼 흥분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흥분이 익숙해져 시들어지면 또 다른 부모 (나의 일부분으로 조각된 정신의 영역)를 찾아나서야하는 고달픈 여정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과정에 지쳐 마음의 힘이 고갈될 쯤이면 왜 나는 다른 사람처럼 삶을 대충 살수 없을까라는 회의감이 슬며시 찾아왔다이럴때는 "도대체 사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그리고 세인의 말처럼, "인생 뭐 있어? 밥 세끼 먹고 등 따뜻하면 그게 천당이지!..." 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요동을 치면나는 바글 바글 거리는 시장 통 속에 들어가 군중에 휩쓸려 아무 생각 없이 본능에 충실해 보려고 애를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얼마가지 않아 곧 나 자신과 삶에 대한 염증으로 여지없이 되돌아와 버렸다.
사람들의 욕망을 소비로 환원시키는 자본주의 시스템 즉, 마음의 결핍인 욕망을 신체의 감각인 소비로 대처시키면서 잠시 얻는 안도와 만족감 그리고 이후에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소비한 것을 무슨 행복의 척도가 되는 양 무한한 자랑,,,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균열되고 결핍되어버린 사람의 허기진 정신을 채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삶의 최선이며 도식인양 의심없이 자신의 고귀한 내적 삶을 병든 문명에 맞겨 버리고 있다. 나는 내 정신과 영혼을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괴물에게 제물로 바치고, 대신 사람은 모두 똑같다라는 동질감이라는 보상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차라리 고달픈 여정을 다시 반복할 것인가스스로에 대한 물음이 도돌이표처럼 사람의 내적 고통에 참여하도록 몰아붙여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만들고 있는것 같았다이러한 선택의 기준은 나의 내적인 고통을 줄이며최고의 쾌락을 얻기 위한 방법이였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사람은 불안을 떨치고 만족과 안도를 하기 위해 쾌락을 추구한다는 쾌락원칙을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한 자아의 노력과 행위들은 개인의 성향과 환경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고 본 것이다따라서 사람은 유아기부터 성인기로 발달하면서 자아의 활동은 좀더 사회적이고 도덕적으로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원천들은 여전히 쾌락을 추구하는 동일선상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섹스는 없다" 라면서 사람이 쾌락을 쫓아 사는 것에 대한 단순반복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섹스는 짧은 만족이며, 공허함은 길다" 말로 바꿔 말하고 싶다. 사람이 쾌락의 원형을 쫓았던 경험에 길들여져 무한 쾌락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사람이 쾌락을 알고 경험할 수 있는 생리학적 기관과 경험이 신체에 축적되어 우리시대는 욕망의 시대무한 쾌락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비록 짧은 쾌락이라도 가정에서 사회에서, 관계에서 다양한 유형으로 맛 볼 수만 있다면 사람은 그럭저럭 무한 쾌락시대의 삶을 살아가는데 큰 불평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댓가로 공허, 회한, 절망의 경험을 치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순환은 벗어날 수 없다이러한 악 순환의 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고민은 오랫동안 철학과 종교, 심리학에서 논의했던 내용 중 하나로써 사람의 쾌락을 유지시키는 대안은 통합적전체성을 띈 참 자기로써 내적인 삶의 확장, 자아 성숙의 연속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타자욕망과 쾌락이라는 시대의 회오리같은 역동은 전체성의 성향을 띈 참자기의 삶을 시기하듯 가만히 두지 않는다시대적으로 언제나 그랬듯이 거짓과 위선, 그럴싸한 영혼의 아첨꾼과 장사꾼경멸과 조소를 짓는 지식인이 많았고, "이렇게 하세요. 큰일 납니다"라고 확성기에 대고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두려움을 심어주거나, "당신의 행복을 책임짐, 무한쾌락 책임보장" 이라는 거짓의 팻말을 들고 있었다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속아 귀를 기울여왔으며 절망해 왔다.   
 
한편, 사람의 빛과 생명을 피워내고 지켜내려는 시대의 현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간혹 볼품없고 달콤하지도 않은 거친 소리를 쏟아냈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이들을 통해 참 자기의 삶을 이어갔다오늘날은 정신분석가, 심리치료사 그리고 상담사 또는 종교의 형태로 생명인 참 자기로써 삶을 탄생시키고 수호하기 위해 무한쾌락 시대에 걸맞는 진화된 옷으로 갈아입었다
 
감각적 실체가 아닌 경험적 실체로 존재하는 내적 삶인 쾌락의 유통기한이 참 자기와 상관있음에도근대 과학 이데화를 꿈꾸는 지식인들에게는 참자기의 형상화는 헛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사람의 주관적이고 내적이며 경험적인 참자기의 삶을 일반화 할 수 없다는 논제가 과학의 영역을 초월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성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불가지론적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참 자기는 진정으로 깨어나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사람은 불안과 욕망을 감지하고결핍과 만족을 반복하면서무한쾌락의 동경을 통해 정신 속에 감춰진 참 자기의 삶을 실현하고 싶은 것이다


참자기 정신분석 심리치료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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