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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및 수필

진실과 허구

참자기 2014-02-27 (목) 20:05 10년전  
50대 미희씨는 차분하고 따뜻하며 자신의 내적인 세계에 기반을 두며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분 이였다. 그녀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한시도 자신의 도덕적 정직성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고통을 분석 세션에서 토로하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정신분석은 내적인 세계를 정돈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외적인 현실과 내적인 세계에서 분열되고 조각난 파편들을 통합시키도록 돕는다. 이것은 외부현실과 내적현실의 일치감이 자연스럽게 생기도록 하며 자신에 대한 기쁨과 평화, 참 자유스러움과 행복을 가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기에 정신분석은 참자기(true self) 삶의 정수(essence)에 머무르려는 사람을 위한 정신 내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희씨는 정신분석은 자신의 삶을 잘 못 살았던 결과로써 시행한다는 선입견으로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희씨가 분석세션에 참여한 것은 누구나 그렇듯이 삶에 대한 혼동은 그녀를 고통스럽도록 만들었고, 이 때문에 그 동안 삶의 신조처럼 지켜왔던 스스로의 정직성 및 행동과 생각에 관해서 의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초기 분석세션에서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도덕적으로 얼마나 정직하게 살아왔는지를 강조하며 자신이 분석세션에 참가할 필요 없는 정당성에 관해 말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녀가 자신의 삶에 관한 정당성을 치료사에게 말했지만 치료사인 나에게는 역설적으로 그녀가 살아왔던 어두운 진실과 혼란스러운 정서가 강하게 유입되었다. 여기서 유입된 정서란(induce feeling) 역전이(counter transference) 라고 부르는 것으로 환자가 치료사에게 유입시키는 정서들을 말한다.
그녀로부터 유입된 정서들은 수치심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분노의 내용들이었다. 따뜻한 미소와 말투에 감춰진 이러한 정서는 순식간에 날카로운 유리조각처럼 튀어나와 치료사인 나를 향할 것 같았다. 이러한 유입된 정서들로 인해 치료세션에서 치료사는 그녀에게 따뜻한 정서로 다가가기 멈칫거려지고, 거리를 두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충동은 치료사인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였다. 이러한 방어기제는 현실에서 그녀와 관계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했었을 것이며 이것은 사람과의 정서적 거리를 만들었기에 그녀는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외로움과 공허감에 지쳤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성은 분석세션에서 치료사와의 관계에서 잘 나타나고 있었다. 치료사가 그녀를 돕기 위해 정서적으로 친밀하게 다가가면 무의식적인 불안을 느끼고 경계한 채 마음의 빗장을 걸었다. 하지만 정서적인 거리를 유지한 채 그녀의 곁에 있을 때면 그녀는 치료사에게 불평하며 관계를 단절하고 분석세션을 떠날 것이라는 엄포를 하거나, 우울함과 공허감을 느끼거나, 치료사의 기분을 맞추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치료사와의 관계에서 안전하며 적당하다고 느끼는 정서적 거리는 매일의 신체적 컨디션, 기분 그리고 일상에서 경험하는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달랐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작용하는 이러한 심리내적인 정서적 작용을 치료세션에서 지각할 수 없었다.
 
미희씨는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일상에서는 이러한 비밀은 잊혀진 채 살아갔지만, 홀로 있을 때나 자신의 내적 세계인 마음이 접촉될 때 이러한 비밀이 기억 났다. 미희씨는 자신의 비밀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지워버리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홀로 있는 시간은 공허와 허무로 가득 차 혼란으로 인한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그녀는 홀로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집안 청소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거나, TV를 보려는 행동 등을 했다. 일상에서 그녀가 홀로 있을 때 행동하는 동기는 내적인 세계인 마음에서 떠오르는 고통스러운 기억과,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감정, 그리고 분노와 혼란스러움의 파편들이 가득 차 있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오르려고 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노력은 다른 행동을 하면서 회피하는 형태로 간혹 성공하기도 했지만, 불안함과 초조함, 슬픈 느낌과 무기력, 수치심과 분노의 감정까지 마음에서 사라지게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치료사에게 나도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그냥 무기력 하고 화가나요”. 라고 말하거나, “왜 사람들은 나를 힘들게 하죠?, 정말 믿을 사람 아무도 없어요”. 라며 불평했다.  
 
그녀의 오랜 비밀은 어린 시절 성폭행 당했던 사건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기억을 선명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반듯하고 정직한 그녀의 삶을 알고 있는 대인관계에서 이러한 사실을 말 할 수 없었다. 사실 유아기의 수치스러움, 분노, 버림받음, 수용되지 못함, 고립됨, 폭행과 폭언 등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경험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음인 무의식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너무나 끔찍스럽기에 대부분 망각되어 기억할 수 없다. 기억하더라도 조각과 파편처럼 남아있기에 전체적 상황에 맞지 않을 때도 많고, 현실적이거나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음인 무의식에는 정동(affect), 환상(fantasy), 충동(impulse) 등으로 뒤섞여 있다가, 홀로 있거나 자신의 마음에 접촉할 기회만 생기면 알 수 있는 마음인 의식에 이러한 무의식적 내용을 전달하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알 수 없는 불안, 초조함, 짜증, 분노, 슬픔, 눈물, 실수, 농담, 행동, 웃음 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면역력을 떨어뜨려 잦은 병치레, 위산과다, 편두통, 생리불순, 소화불량, 틱 장애 등 노이로제 같은 신체반응으로도 나타난다. 잠을 잘 때는 꿈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상징과 은유를 통해 나타내기도 하고, 너무나 고통스럽고 심각한 정신적 외상(trauma)는 악몽과 불안 꿈을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미희씨를 혼란과 고통으로 뒤섞이게 만들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의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진실은 그녀의 무의식 속에 고통으로 감춰있었다. 그녀는 현실적 삶에서 정직한 삶으로 자신의 숨겨진 진실을 은폐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인 무의식에서는 고통스러운 성폭행의 경험과 뒤섞여진 혼란과 슬픔은 그녀의 삶을 공허하며 슬픔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영문을 모른 채 늘 삶이 흔들리며 분노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성폭력의 기억과 경험을 없애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정신분석을 통해 더욱 자신의 정직성을 지키려는 시도를 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아직 의식할 수 없었지만 정신분석을 통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자신의 깊은 마음의 고통을 소화하길 바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50 평생을 홀로 치열하게 마음의 전쟁을 하다가, 분석세션을 진행하면서 치료사와 함께 자신의 고통을 이해한 채 영원히 떠날 보낼 준비를 해갔다.  
 
70회기쯤 되어 미희씨가 치료사에게 더 이상 자신의 삶의 정직성을 주장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깊은 마음의 고통과 진실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고통을 소화할 수 있었던 동력은 치료사와의 진실한 관계에 있었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기고백을 할 때는 미희씨가 자신이 성폭행 당했던 수치감이 느껴져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영문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었고, 혼란스럽거나 당황하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는 언제나 진실과 허구라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의 진실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 필요하다. 그 여정은 거칠고 험난하고 어쩌면 큰 충격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더 이상 허구에 매달려 온갖 신경증, 불안증, 강박증 그리고 우울증과 편집증 속에서 시름하며 진실 속에 감춰진 삶의 보화를 무시하며 자신의 삶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먼저 라는 진실을 소화할 때 평화와 기쁨이 내면화(internalization) 될 수 있을 것이다. 깊은 마음인 무의식의 진실을 밝히는 동력은 치료실 안에서 경험하는 치료사와의 관계의 진실성에서 큰 힘을 얻는다. 개인의 진실과 허구를 조명하는 것은 정신내적인 고유한 성찰에서 비롯되며, 정신분석은 이러한 지혜와 통찰을 담아놓은 과학적인 학문체계로 전승되어 온 것이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이렇게 사용하고 싶다. “지금 진실과 함께 계신가요? 당신! 잘 살고 계시죠? “


참자기 정신분석 심리치료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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