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기원 > 칼럼 및 수필

본문 바로가기
subP1.jpg
칼럼 및 수필

무의식의 기원

참자기 2016-05-13 (금) 20:59 8년전  
고대로부터 발현되어온 무의식 기원에 대해
 
 
(본 칼럼은 학술적 인용이나 배포를 금지합니다.)
 
무의식(Unconsciouness)[1]은 자기자신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사회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중심적 화두입니다. 한번쯤 들어보시거나 흥미를 가지신 분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무의식이란 용어가 인간의 생리와 연결된 정신의 문제, 타인과 관계성으로 확장성 그리고 사회와 문명의 문제 등 재 정의시킨 사람은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공헌입니다. 이러한 무의식의 개념은 사실 프로이트 이전에도 동 서양의 지혜자 연구 속에 유사한 용어와 의미들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프로이트 이전에 서양세계 속에서 무의식은 어떻게 이해되어 왔고 계승되어 확장되어 왔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의식의 개념적 의미가 확충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본 강좌를 통해 앞으로 정신분석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주춧돌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무의식의 문제가 서양철학의 중심 화두로 떠오르게 된 시기는 19세기 독일철학입니다. 이 시기에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에른스트 플라트너(Ernst Platner 1744-1818)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철학적 잠언 (Philosophische Aphorismen, 1776) 에서 자신의 스승이었던 볼프(Christiabn Wolff 1679-1754)[2]의식이라는 개념에 대한 부정적인 유비적 개념으로 무의식이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3] 원래 그 당시에 무의식에 대한 용어는 모든 문학과 예술 자연과학과 심리학 등 모든 영역에서 다양하게 사용했지만 점차 이성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과학적인 세계관이 지배하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양 근대에 들어서 무의식이라는 개념이 화두가 되기 이전인 고대와 중세에서 인간 영혼의 문제라는 용어로 인간, 이성, 욕망, 감정, 행동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해서 다뤄졌습니다. 당시에 인간의 영혼은 심층적 영역인 정신세계, 행위적 영역인 현실세계가 어떻게 구조화되고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탐구였습니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피타고라스(BC 570~490)가 오르페우스교[4]의 영향을 받아 윤회를 통한 인간 영혼의 정화를 이야기 했습니다. 원래 인간은 영생을 하지만 죄를 지어서 육체의 감옥이라는 세상의 욕망 속에서 윤회하면서 영원히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윤리적 종교생활과 금욕생활을 하면서 조화되고 질서 있는 정화된 세계로 내적인 욕망과 감정들을 순화시키는 것입니다. 피타고라스의 인간의 영혼관은 이후에 플라톤(bc427~347)에서 이데아 사상으로 계승됩니다. 그는 현실은 그림자이며 초월적 본질은 저 우주 밖 어딘가에 있다고 봤습니다. 플라톤에 의해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이분법적 사고는 본격화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사고는 오늘날까지 이성과 감정, 정신과 육체가 마치 분리된 것처럼 여기는 세계관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이 육체에서 벗어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이데아를 탐구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가꿀 수 있는 이성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파이드로스(phaidros)[5]의 말과 마부의 비유에 잘 나타납니다. 인간의 영혼에 이성의 역할이 중요시되는 플라톤의 사상은 중세에 들어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의 종교관으로 이어집니다.[6] 그리스도교의 교부의 기틀을 마련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선과 악의 문제와 영혼의 행복에 대해 성찰하며 인간의 심층적 세계를 탐구합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정의를 이성적인 영혼이지만 육체를 사용하는 죽을 운명이라고 하며, 영혼이 육체보다 우월하다는 플라톤의 사상을 계승합니다. 그는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하나님의 빛을 은총과 계시를 통해 받아들여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여기에서 이성의 역할은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심층적 세계인 욕망과 감정의 치유는 서양세계에서는 칸트에 이르러 현대까지 자기 존재 인식방법으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서양세계가 중세를 지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무의식에 대해서 생각들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간의 정신적인 세계를 추상적으로 생각해왔던 계몽주의 학자들은 경험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학자들의 거센 반발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대표로 알려진 칸트(I Kant 1724-1804)[7]와 셀링(Friedrich Wilhelm Schelling 1775-1854)[8]을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계몽주의로 대표적 인물로 꼽은 칸트는 그의 저서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Anthropologie in a pragmatisher Hinsicht, 1978)에서 인간의 내적 지각능력인 감정, 감성, 욕구에서 비롯된 꿈, 상상, 기억, 정신질환, 의지, 분노 등을 이야기 합니다. 그는 이러한 내적 욕망은 이성에 의해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깁니다. 그는 이와 같은 인간의 심층세계를 다룸으로써 오늘날 무의식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문제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낭만주의의 대표라고 했던 셀링 같은 경우 계몽주의의 내적 경험들을 이성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은 형식적일 뿐 아니라 공허함만 경험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가 말했던 자연이 정신이고 정신은 보이지 않는 자연이다라는 말은 자연은 물리적이고 이성적인 개념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자연섭리에 의한 참여이며 이것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술가로써 창조성이 무의식을 이성으로 규정하려는 것을 넘어 인간의 삶의 원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논리인 인간의 생명은 하나의 자연적 현상이며 이를 이성으로 규정하려는 행위자체가 공허하다는 주장은 근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신비주의와 종교에서 흡수되면서 쇠퇴하게 됩니다. 
 
인간의 심층세계를 파악하면서 무의식을 밝히려고 한 시도를 논하기 위해 근대의 학자들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쇼펜하우어, 니체, 키에르케고르 등을 당시의 대표적 인물로 말할 수 있는데 이들은 인간의 고통과 허무, 불안과 좌절에 대한 현상을 탐구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는 인간의 의지와 자연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계보를 충실히 연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 내부에서 어떤 목표도 목적이 없이 올라오는 충동이라는 의지가 있다고 봤습니다. 이러한 충동의 세계는 오늘날 무의식과 같은 정신내부 힘의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힘 중에서 성욕은 가장 강렬한 자기보존을 영원히 지속시키려는 충동입니다. 이를 통해 종족보존을 하는 것은 유한한 자신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는 인간은 하나의 욕망덩어리이며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통스럽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성충동을 넘어서 타인과 고통을 나누는 윤리적 방법, 본래의 고통을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벗어나는 미학적 방법, 고통 부정이나 포기 등을 통해서 벗어나는 종교적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현재의 심리학에 밀접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 (kierkegaard 1813-1855)는 인간이성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난무했던 근대적 배경에서 불안과 절망의 심리학에 대한 근간을 마련합니다. 인간의 자유란 유한적인 자신의 존재에 기반하는데, 자아가 없다는 무의 상태는 불안을 야기합니다. 이와 같은 실존적 불안과 성욕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럴수록 불안은 더 가중되는 역설에 인간이 놓여있습니다. 인간은 실존적인 자신을 인식할수록 자아를 점차 잃어가는 분열현상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해야 원래의 자아상태로 치료하고 회복할 것인가는 그의 주요한 논점이 됩니다.
니체(Nietzsche 1844-1900)는 분열된 자아의 모습을 더욱 본격화시켜 묘사한 후 이후에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의 몸 이성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되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구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몸 이성은 작고 연약한 자아의 불안, 허무함과 고통을 치유해내는 하나의 대안인 것입니다
 
이처럼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에서 논의되었던 무의식, 정신, 이성, 불안, 허무, 정서, 등의 연구들은 프로이트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인간이 이성과 의식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증하는 중요한 단서와 증거로 무의식이 실제로 작용하는 원리와 현상들을 밝혀냈습니다. 구체적으로 한 개인의 심층 심리뿐 아니라 인간 관계 그리고 사회 문명 안에서 발현되는 원리를 탐색해 나가는 동시에 인간의 이성, 행동, 상상, 생각 등 모든 정신기제를 무의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인간에 대해서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재정의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양세계에서 무의식의 개념이 고대로부터 어떻게 확충되어 프로이트에 이르러 개념화 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비롯해서 심층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대로부터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분석 입문에 앞서 무의식의 기원을 되 짚어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의식은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된 것이 아니며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 본능과 충동, 내부세계와 외부현실, 생명과 죽음, 사랑과 증오, 나와 타인, 불안과 자유, 고통과 해방, 쾌락과 행복 등에 대한 지혜로 전해져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 정신분석이라는 신체 생리학적 경험과 현상으로 병행하여 개화된 것입니다. 우리가 염두에 기억해야 할 것은 티비나 책에 나온 유명한 사람의 말을 몇 마디 수학공식처럼 외워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마법이 일어나 정신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아직 어린 아이가 하루아침에 어른이 되길 기대하는 마법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좌절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분석을 통해 진정으로 참 자기가 되기 위한 변화를 위해 가장 먼저 선행해야 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경험되는 현상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지혜와 생명력이 우리마음에 내면화하기 되어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은 무의식적인 과정이므로 본인도 왜 일어나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마치 아동이 한창 키 크는 성장기에 며칠 자고 나면 훌쩍 키가 커 있는 경험처럼 유사하게 일어납니다.  
 
이것은 그 동안 유지해온 자신에 관해서 이성으로 합리화 했거나 혹은 주관적 경험으로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증했거나 혹은 타인의 반영으로부터 규정되어온 자신의 자아 이미지를 서서히 탈피하여 새롭고 건강한 자아로 조형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자신의 이미 고착되어 정형화 되어버린 정서와 충동으로부터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저항을 경험할 것입니다. 또한 변화되어가는 자신에 대해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타인으로부터 이차적 저항도 생길 것입니다. 만약 참 자기 자신으로 회복하려는 염원이 클수록 경험되는 혼란스러움이 자칫 그 동안 애써서 이룩해 놓은 자아 이미지를 위협하는 착각을 일으켜 분노의 감정도 파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건강하고 새롭게 기능하는 자아로 회복하는 누구나 경험하는 과정입니다. 내적 변화를 위한 투쟁에서 모두 인내하시길 바랍니다. 정신분석은 여러분 무의식 속에 숨겨진 보석처럼 빛나는 진실을 발견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여러분 속의 진실은 자신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치유하며 행복한 삶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1] 무의식(unconsciouness) 혼수상태(coma)처럼 의식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의식으로 알 수 없는 심층적 정신영역인 비의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무의식이란 번역이 먼저 통용되어 사용하므로 앞으로 무의식이란 용어로 쓸 것이다. 
[2] 계몽주의 철학자로써 철저한 이성주의적 입장을 펼쳐 이후 칸트에게 영향을 끼친다.
[3] Ludger Lutkehaus(Hrsg). Tiefenphilosophie. Hamburg 1995
[4] 고대 그리스의 종교로 인간의 생은 윤회하며 죄를 씼을 수 있으며, 오르페우스의 신비주의와 체험인 밀교(MYSTERY) 행위와 금욕과 고행을 통해 신적인 생명으로 승화한다고 믿었다. 이것은 마치 미트라(Mithra) 종교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트라는 태앙과 빛, 약속의 신으로 bc1400여년쯤 확장된 것으로 페르시아로부터 확장되었다. 훗날 조로아스터교의 큰 영향을 줬고, 원시기독교와도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윤회는 BC800 여년경 인도 우파니샤드(불교의 사상적 영향을 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파니샤드에서도 브라만(범우주)에서 아트만(개인본질)과 일체되어 있고 브라만은 만물에 스며있기에 여기서 신(브라만)을 찾으라고 한다. 불교의 가르침 중 수행을 통해 자신이 부처가 되는 것에 연관되어 있다.
[5] 플라톤이 지은 작품으로 파이드로스와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한 내용이다. 주로 인간의 영혼과 참된 에로스는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플라톤은 영혼을 세 부분으로 나눠본다. 신적 영역인 이성, 기개thymos 는 흰말 (그리스어 티모스는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정, 성취욕 영어로는 aspiration 열망, 포부, 염원이 잘 표현됨), 욕망은 검은말이다. 이성은 마부는 지각세계인 기개인 흰말과 다루기 어려운 욕망의 검은 말을 다스리는 것이다. 영혼의 세 부분은 각각의 덕이 있다. 이성의 과제는 현명하게 되는 것으로 지혜가 덕이다. 기개의 과제는 활력 있게 이성을 따르는 것으로 용기가 덕이다. 욕망 역시 이성을 따라야 하는데 그것의 덕은 절제다. 이러한 영혼의 세 영역이 따르는 가장 상위의 덕목이 정의가 된다.
 
# 각주 일부 생략함..


참자기 정신분석 심리치료 연구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대로 455 강남태영데시앙루브 A동4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