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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lescent Moods and Remodeling of Psychic structures in Adolescence

참자기 2014-05-29 (목) 15:51 10년전  
Jacobson, E.(1961) Adolescent Moods and Remodeling of Psychic structures in Adolescence. Psychoanal, st. child, 16;164-183. / 번역: 신원일
 
청소년기 기분과 심리구조의 개조[1] 
 
본 강의는 청소년기 발달 문제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 분야의 모든 분석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아직 완전히 탐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이 주제에 대한 마지막 논문에서 안나 프로이트 (Anna Freud, 1958)은 이처럼 흥미로운 시기의 혼란스러운 정서적 발현 및 징후학에 대해, 우리의 통찰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 이유들을 논의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상중 (喪中)이나 불행한 연애 기간 동안 닥친 곤경에 대한 분석적 치료에 저항하는 청소년들의 반응을 비교한 후, 청소년들이 이 두 상태에서 상당히 공통된 정서적 상황을 가진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베르타 본슈타인과 나탄 루트 (Berta Bornstein and Nathan Root, 1957)은 부모들과 헤어져 새로운 대상에 대한 탐색을 시작해야 하는 청소년들의 발달에서 애도의 중요한 역할을 환기시켰다. 그렇다면 청소년이 그처럼 폭력적이고 특이한 정서적 위기를 통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소년이 신속하고 재빠른 기분 전환에 굴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주 동안 그는 서글픈 슬픔이나 벨트슈메르츠 (Weltschmerz: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서 오는 우울감), 절망감에 빠질 수 있다. 그 다음 주는 진지한 회상과 집중의 기간이 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그의 번뜩이는 열정이나, 학업에 대한 불타는 관심, 또는 전염성을 가진 유쾌함과 영감에 찬 사교성에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내일 우리는 그의 난폭한 활동이나 터무니없는 무모함에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은밀하고 열정적인 숭배와 압도적인 황홀을 느낀 후에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기분의 본질과 기원은 무엇인가? 많은 청소년들이 심각한 죄의식뿐만 아니라 건강염려증 신체 몰두 (hypochondriacal body preoccupations)나 편집증적 두려움에 대한 자기의식과 괴로운 수치심을 포함한, 우울과 절망의 반복으로부터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게다가 청소년의 현저하고 독특한 정서적 발현에서 자신과 타인들에 대한 그의 감정이나 정체성 감각의 혼란스러운 동요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한 때는 "나는 나고 살아 있는 존재이며, 세계는 나의 것이고 나의 것이 될 것이다"처럼 풍부한 경험과 결합되어 세계나 사람들, 자연, 예술, 신과의 친밀감을 보여주다가, 다른 때에는 삶이나 세계, 자신, 또는 세계 속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의미에 고통스러운 의심을 품거나, 절망적인 고립감과 외로움으로부터 고통을 받거나, 존재와 삶, 또는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해 아무 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처럼 격렬한 정서적 현상들을 일으키는 심리적 과정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다른 저자들 중에서 특히 안나 프로이트 (Anna Freud, 1936, 1958)와 헬레네 도이치 (Helene Deutsch, 1994)에 의해 매우 아름답게 묘사된 청소년의 내적 상태를 시각화시켜야 한다.
 
사실상 청소년기는 아동기 , 자아와 과거의 대상들 - 에 대한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상태로 미지의 성인기로 들어가는 입구에 쳐진 많은 장벽들을 통과하는 시기이다. 대상들에 대한 유아적 사랑에서 출발한 청소년은 아동기에 매우 중요했던 사람들로부터 벗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이전의 발달 단계보다 더 신속하게 이전의 쾌락 추구를 포기해야 한다. 조만간 집을 떠날 준비를 하는 그는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개인적 사회적 관계 및 새로운 관심과 승화에 대한 책임감뿐만 아니라 성인적 성과 사랑에 도달해야 하며, 종국적으로는, 그의 미래 지향적 방향을 제시하고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 , 직장을 결정할 직업적 선택과 미래의 재정적 사회적 상황, 그리고 사랑하는 대상 (결국에는 배우자)의 선택 - 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들과 기준들, 목표들을 성취해야 한다.
 
이것은 정력의 구조적 변형과 정감의 경제적 재-배분, 그리고 전체 심리 조직화의 역동적인 점검을 일으키는 완전하고 새로운 방향제시를 필요로 한다. 나는 이러한 과정들의 모든 측면을 다룰 생각이 없지만, 주로 그 변화가 청소년의 기분상태에 반영된 유아기 대상 관계와 동일시 (identification)에 대한 이 과정들의 영향을 논의할 것이다.[2]
우리는 청소년기의 모든 정서적 불안과 혼란이 거대한 정신생물학적 변화들로 인해 발생한 갈등들 주위로 집중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나는 사춘기 초기부터 생겨난 본능적 갈등들의 복잡성을 조사할 수 없다. 본 논문에서는, 청소년의 본능적 발달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인기로 나아갈 때 그가 새로운 모든 단계에서 불안과 혼란, 해체, 그리고 유아기 입장으로의 회귀를 경험한 후 더 발전된 성인의 레벨에서 추진과 재조직화를 거치는 방식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확실히 그러한 과정들은 어떠한 발달 단계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헬레네 도이치 (Helene Deutsch, 1944)에 의해 기술된 점진적 힘들과 퇴행적 힘들 간의 "충돌"은 역동적인 청소년기 동안 일어난다. 이러한 충돌은 낡은 구조들과 조직들의 일시적 해체뿐만 아니라, 새로운 구조의 형성과 새로운 위계적 질서의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초기 심리구조는 결정적으로 종속적 역할을 떠맡는 반면, 새로운 심리구조는 지배력을 획득하고 유지한다.
 
모든 영역과 시스템에서 신속하게 되풀이되는 일시적 퇴행에 대한 청소년의 성향은 확실히 자아에 대한 너무 강력한 본능적 힘들의 공격으로부터 발생하게 된다.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에 참여하면서도, 자아는 새로운 방식의 본능 제어와 새로운 배출 경로를 발견하기 위한 만만찮은 과제에 대처하기 전에, 확실히 과거 입장을 복구시킬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과제는 청소년이 아동기 애착 대상을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허용 가능한 최적의 본능적 정서적 자유 (이러한 자유는 성인의 성적 관계와 사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 필요하다)를 획득하는 것을 돕는다.
 
우리는 이러한 분투가 일어날 때 잠복기 동안 확립된 방어가 크게 훼손됨으로써 본능적 충동의 공격 앞에서 부분적으로 무너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은 방어 시스템의 재-구성과 재-조직, -결속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이 시점에서 오이디푸스 갈등을 통과한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유익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경험하는 아동은 부모에 대한 정서적 애착을 원하기 때문에 자신의 성적 적대적 충동을 억압해야 했다. 청소년의 경우, 성적 성숙 과정은 오이디푸스 이전 본능의 일시적 부활과 오이디푸스적 본능의 자극을 유발함으로써, 유아기의 분투를 소생시킨다. 그러나 이제 근친상간적인 성적 적대적 욕망은 마침내 포기되어야 한다. 게다가 부모에 대한 청소년의 정서적 유대는 대상 선택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매우 느슨해져야 한다. 이것이 청소년이 보이는 비탄의 원인인데, 아동기에서는 이와 유사한 반응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정서적 과제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이 과제가 부모에 대한 실제적이고 정신적인 의존의 결정적이자 최종적인 포기를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부모적 권위로부터의 분리"는 프로이트 (1905)에 의해, "가장 중요한 분리일 뿐만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운 심리적 성과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실제로 청소년은 곧 성년이 됨으로써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는데, 이것은 그가 자신을 지배한다는 사실이 사회에 의해 인정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의 실제적 의존이 20대나 그 보다 더 길게 연장될 수 있지만, 이 단계는 오이디푸스 갈등에 대한 청소년의 최종 해결이, 자아와 초자아의 독립 및 자율의 최종적 확립에 필요한 가족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수반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분투는 자아의 재빠른 성장 (이러한 성장이 본능적 발달에 항상 적합한 것은 아니다)에 수반되는 불규칙성에 의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초자아의 형성은 아동이 오이디푸스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조기에 외부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성을 성취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청소년기에 이르러, 유아기의 애정 대상과 단절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새로운 심리구조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족적 유대로부터의 벗어남과 성숙을 위한 분투는 확실히 그의 자아와 초자아에서 일어나는 놀랄만한 변형과 새로운 구조의 확립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물론 우리는 청소년기 동안 초자아가 재조정되고 통합된다는 점을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통합과정은 정확히 무엇을 포함하고 있는가? 방어 시스템의 재설정을 위한 필요성은 이미 언급되었다. 그렇지만 방어의 그러한 재조직화는 확실히 초자아 체계의 개조를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이에 크게 의존한다. 초자아는 이상화된 부모적 이미지들이나 부모적 기준, 요구, 금지와의 부분적 동일시 (identification)를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이 질문은 우리를 동일시의 문제로 곧바로 안내한다.
 
우리는 동일시를, 방어 메커니즘 기능들의 획득을 통해 아동으로 하여금 본능적 좌절이나 정서적 박탈, 대상 상실, 또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로 인해 생겨나는 반응들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도록 유도하는 심리 형성으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비탄의 반응에서 보는 것처럼, 동일시는 부모적 원천들로부터 발달할 수 있으며, 성인기 동안 이와 관련된 목적들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오이디푸스 애정의 대상들을 결정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청소년이, 그의 초자아와 자아에서 부모적 원천들과의 매우 강한 동일시를 통해 이러한 대상들을 다시 얻으려고 노력할 것이란 점은, 쉽게 추론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데, 그에 합당한 이유들을 가진다.
자아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아동과 그의 유아적 자아의 장기적인 정신생물학적 의존으로부터 기원하는 동일시가 이러한 동일시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헬레네 도이치는 "아동의 자아가 약해질수록, 성인 세계에 대한 적응에서 성인과의 동일시에 더 많이 의존한다"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기까지 정상적인 자아를 가진 아동도 청소년기까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접촉에 의한 것보다, 부모나 부모적 인물과의 동일시 및 그러한 관계의 중개를 통해, 사회 (그리고 일반적으로 현실)에 적응하는 방법을 더 많이 배운다. 그렇지만 그의 자아가 성숙해지고 이차적 자율성을 확립하는 정도까지, 그러한 동일시는 원래 기능의 본질적 부분을 상실해야 한다. 따라서 유아기 애정 대상들과의 동일시를 강화하여 그러한 대상들의 상실에 대처해야 하는 청소년의 요구와, 그러한 동일시가 점점 더 불필요해진다는 사실 간의 모순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초자아의 목표들과 기능들이 적어도 성과 관련하여, 오이디푸스기보다 더 놀랄만한 변화를 거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초자아가 형성되는 유아기 동안, 일반적으로 아동은 금지된 본능적 충동을 성적 활동의 포기 지점까지 억압하고 억제하는 방어의 도움을 받아,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해결한다. 청소년기 동안 초자아는 다시 한 번 근친상간적 금기를 강화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억압의 장벽들을 개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성인의 성적 자유로 나아가는 길로 안내하고 개인적 애정 관계를 성숙하게 만들기 위해 에너지 반집중 (countercathexes)의 부담을 제거해야 한다. 이러한 모순적 목표들은 동일시의 변천과 재조직화, 그리고 청소년기 동안 초자아와 자아, 이드가 거치는 변화들에 반영된다. 그렇지만 이것들을 조사하기 전에, 나는 먼저 앞서 주장된 내용들에 대한 일정한 단서들을 강조해야 한다.
 
부모에 대한 청소년의 동일시에 의해 청소년에 대한 부모의 중요성이 상실된다고 주장할 때, 또는 근친상간적 애정 대상들의 상실에 대한 청소년의 비탄에 대해 말할 때, 즉시 청소년이 과거의 동일시를 근절하지 않거나 리비도의 투자를 고갈시키지 않는 한, 청소년기 동안 오이디푸스적 유대와의 최종적 단절과, 새로운 대상 관계의 확립, 그리고 새로운 구조 형성 및 재조직화의 과정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부언해야 한다. 그들은 새로운 대상들에게 자신들을 전위시키고 그들의 특성들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애착물 (부분적으로는 새로운 동일시)에 종속시킨다 (A. Katan, 1951). 구조적 관점에서 말하면, 이처럼 새로운 구성이 과거의 구성으로부터 유기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한, 초자아는 개조되거나 재조직되거나 통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개인적 성적 관계와 새로운 자아 구조 및 자아 기능이 구축되거나 통합될 수 없다. 사실상 성인들에게서 반대감정이 양립하지 않는 정서적 관계의 생존과, 부모와의 근본적 동일시의 생존은, 청소년기를 거치는 사람들이 가족에 대한 그들의 유아적 욕망과 의존을 성공적으로 포기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앞서 나에 의해 언급된 논문에서 안나 프로이트 (1958)는 가족과의 유대를 단절하기 위한 노력에서 청소년에 의해 사용되는 다양한 장치들을 설명하는데, 그녀는 이 단계에서 유아적 애정 대상들의 "내적 상실"이 함축하는 중요한 의미에 대해 지적한다. 나는 청소년기 유아적 애정 대상들로부터 정감 (cathectic)이 지속적으로 회수되면서 발생하는 심각한 병리에 논의할 시간이 없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발달에서도 청소년들이 일시적인 자기애적 후퇴기로부터 "내적" 대상의 상실 지점으로까지 통과할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결정적인 것은 짧은 기간이 아니라, 대상 세계로의 복귀와 새로운 발전 이후에 정상적으로 이어지는 그러한 상태의 가역성 (reversibility)이다.
 
이제 청소년의 자아와 초자아의 동일시에서 특수한 변화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무엇보다도 우리는 가장 예민하고 어려운 단계가, 종국적으로 (성적 활동 및 다른 성인 활동에 탐닉할 권리를 부여하는) 성적으로 활발한 사람들 및 부모와의 지속적인 동일시를 점진적으로 확립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과거에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이러한 동일시가 완전히 자아친화적 (ego-syntonic)으로 된다는 사실과, 초자아와 자아가 성숙과 재구성, 통합을 거치면서 새로운 레벨의 힘과 자율성에 도달하는 정도까지만 지배력을 획득한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실제로 성인의 성적 자유에 대한 문을 개발하는 이러한 동일시는 점차적으로, 새롭거나 수정된 초자아 동일시에 의해 개발되는 자아의 모든 영역에서 성인들과의 폭넓은 동일시 과정의 통합적 일부분으로 되어간다. 이러한 사실은 초자아의 도덕적 규범들이 청소년기에 거쳐야 하는 변화들로, 우리를 안내한다.
 
문제를 상당히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다음처럼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아동기 동안 초자아는 "만약 네가 부모의 요구와 금지를 확인한다면, 어른이 되었을 때 성적인 쾌락이 너에게 부여될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이제는 다음처럼 전달해야 한다: "네가 유아적 본능과 욕망을 포기하고 너의 아동기 애착물을 놓아주며, 성인의 윤리적 기준과 책임을 받아들이는 정도까지만, 성인의 성적 자유와 정서적 자유를 즐기는 것이 허용된다."
 
이를 통해 청소년은 근친상간적 금기의 견고한 재확립에 기반하는 새로운 체계의 목표들과 가치들을 구축하는 동시에, 성적으로 금지하는 이상화된 부모적 이미지들을 누그러뜨려야 하며, 성적으로 활발하지만 점차 묵인하는 부모들의 현실적 개념들과 이상화된 부모적 이미지들을 조화시켜야 하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과제에 직면한다. 우리는 이것이 자아 이상과 초자아 기능의 내용과 성질에서 상당한 변화들 , 동일시 과정들로 인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자세히 보여지는 것처럼) 종국적으로는 더 성숙해지고 더 자율적으로 되는 자아에서 새로운 구조 형성을 통해 강화되는 변화들 - 을 가정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러한 과정들은 가장 상반된 목표들과 목적들의 조화와 통합 (그리고 매우 모순된 동일시의 조화와 통합)을 포함하기 때문에, 확실히 일시적으로 초자아와 자아를 약화시킨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실패는 우리의 많은 환자들에게서 명확히 나타난다. 그들에게서 성인이 된다는 개념은 완전한 본능적 자유의 달성을 의미하는 판타지로부터, 완전한 본능적 포기를 의미하는 사고까지 다양하다. 따라서 더 짧든 더 길든 이러한 변형 과정들이 청소년의 초자아 기능과 행동에 상당한 동요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 및 대상 관계도 교란시킨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억압을 부분적으로 완화시키려는 분투 속에서 청소년은 심각한 성적 갈등과 자기애적 갈등, 그리고 이성뿐만 아니라 동성에 대한 태도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양가감정적 갈등으로부터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분투가 일어나는 동안, 그의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의 증가된 압력을 경험하게 되고, 초자아에 굴복하거나 저항할 수 있으며, 초자아를 압도할 경우 이드의 힘에 합류한다. 따라서 성적이거나 공격적인 행위 기간과 자기애의 과잉 기간이 후회의 기간이나 금욕 기간, 또는 엄격하게 절제적인 도덕적 행위 기간, 또는 종종 죄의식과 수치, 열등감의 기간과 교차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로부터 우리는 실제로 정신생물학적인 성적 발달과 재빠르고 현저한 신체적 변화,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자아의 정신적 성장이 (과거에는 초자아의 구성에 흡수되었던 성적이고 적대적인 충동과 무제한적인 자기애 노력을 해방시키는) 거대한 정신적 에너지를 창출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사실상 그가 자신의 유아적 애정 대상들로부터 멀어지는 정도까지, 청소년은 진정으로 대상지향적인 목표들에 대한 일시적 비용을 치르면서 자기애적 목표와 몰두에 대한 오랜 과잉 참여 단계를 통과한다. 안나 프로이트 (1936)와 헬레네 도이치 (1944)는 청소년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자기애의 강화를 지적하였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가 살펴볼 것처럼, 이처럼 증가된 자기애는 결국 자아와 대상 관계를 위한 상당한 영역을 확보한다.
 
청소년의 동요와 행동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초자아의 일시적이면서 부분적인 붕괴와 퇴행적 장벽들로 인한 방어적 작용의 퇴행적 특징들이다. 자신의 과다한 본능적 분투를 막으려고 하는 청소년은 다시, 부정이나 투입, 투영 같은 원초적 방어에 의존할 수 있다. 또는 성을 막으려는 시도에서 공격성을 사용하거나, 성기 단계로부터 전-성기 단계로 (또는 이성 애착과 행동으로부터 자기애-동성 애착과 행위로) 이탈한 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또는 자신의 연령대에 속하는 대상으로부터 더 성숙한 대상으로 (심지어 근친상간적 대상으로) 향하거나 그 반대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청소년이 정신병질 (심지어 정신병)을 암시하는 행위들을 발달시킬 수 있는 이유이다.
 
초자아와 이드의 상반된 목표들 간의 조화를 위한 노력을 통해, 청소년은 이 국면에서 초자아와 이드의 재-형상화와 재-투영을 부모들보다 더 잘 수행하는 외부적 사람들 (또는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그룹들)로부터 도움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순수한 사람들이나 성자들, 유혹적이면서 무모한 사람들이 존경과 모방, 경멸,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그들은 그가 추구하는 덕이나 겸손, 순결, 또는 자신의 성적 유혹과 야망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청소년들에 의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영광과 경배, 모방을 받는 사람들의 유형들을 관찰할 때, 우리는 자아 이상과 초자아를 개조하려는 노력이, 도덕적 목표들보다 전-성기적 자기애 이기심과 쾌락을 표현하는 가치들이나 유아적 초자아 전조들을 강력하게 소생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앞선 논문 (1954)에서 초자아 발달의 전-단계들을 논의하였다. 실제로 청소년의 영웅들은 신체적 강함이나 매력, 성적인 성공, 영예, , 엄격한 경력, 스포츠나 예술, 과학 분야에서의 두드러짐, 또는 사업이나 금융, 정치에서의 현저한 지위, 심지어 범죄의 유명세를 통해, 청소년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다. 게다가 그러한 사람들과 그룹들, 또는 그들이 대변하는 가치들에 대한 청소년의 숭배는 일시적이지만 강렬한 동성애적 (또는 이성애적) "충돌"다소 가학피학성적인 색채를 빈번하게 보여준다 - 로 표현될 수 있다.
 
이것은 초자아와 자아 간의 관계가 일시적으로 비-중립화되고 재-외재화된다는 점과, 자아 이상 자와 대상의 유사-이상적이고 영광스러우며 원하는 이미지들 (이러한 이미지들은 청소년의 몽상에서 현저한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매우 자기애적인 성적이고 공격적인 분투를 대변한다)로 부분적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진정으로 대상지향적인 목표들이나 초자아의 목표들보다 자기애적인 본능적 목표들을 지원하는 그러한 가치와 이익, 쾌락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종종, 초자아와 자아에 대한 청소년의 재구성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성인의 눈에 피상적이거나 심지어 위험스러운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본능적 육체적 정신적 지적 성숙 과정의 발전을 가리키는 그처럼 세속적인 야심의 일시적 확대는, 실제로 자아 발달에 대한 매우 자극적인 효과를 미칠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초자아의 기능들이 자아로 위임되면서 초자아의 점진적인 변형을 일으킨다. 이러한 점은 자부심의 문제들에 대한 청소년의 분투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이처럼 새로운 목표들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도덕적 영역으로부터 모든 분야의 육체적 성적 지적 사회적 성과로 확대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추가로 우리는 청소년의 재빠른 성장과 변화가 자기 표상 (self-representation)의 지속적인 재조정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그의 일시적인 정신적 육체적 현실에 대한 검증, 그리고 그의 육체적 정신적 잠재성에 대한 검증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초자아에 의해 일시적으로 획득되는 가학적 특성의 고통스러운 죄의식과 더불어, 강렬한 수치심과 열등감이 나타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청소년의 수치심과 열등감은 자부심의 동요가 초자아와 자아 간의 긴장을 표현하는 도덕적 갈등에서 기원할 뿐만 아니라, 자아 내부의 심각한 긴장, 그리고 자신이 되기를 원하는 강력하고 영광스러우며 빛나고 세련된 성인의 이미지와, 때때로 자신이라고 믿는 이미지 (또는 실제로 거주하는 두 세계 사이에 위치하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부정할 수 없는 섣부른 존재의 측면) 간의 긴장에서도 기원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청소년이 느끼는 정체성 동요의 원인은 바로, 그러한 수치심 및 열등감과 도덕의 혼합이다. 이처럼 원초적인 자기애 갈등들은 도덕적 자부심의 상실과 총체적 자부심의 상실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도덕적 거세 공포를 소멸의 퇴행적-원초적 공포로까지 확대시키기 때문에, 때때로 자아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를 위협할 수 있다. 수치심과 열등감은 죄의식을 흡수하거나 죄의식의 가장에 이용될 수 있는데, 우리는 그와 정반대의 관계 (, 죄의식이 수치심과 열등감을 흡수하는 것)도 발견할 수 있


참자기 정신분석 심리치료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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