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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및 수필

통제

참자기 2014-09-04 (목) 13:22 10년전  
  통제.docx 14.7K 0 10년전
"상담을 몇번이나 해야 나아질 수 있나요?"
"이곳의 상담은 어떻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거죠?"
"나는 무슨 병을 가지고 있는거죠?"
"상담을 한번 해보고, 계속 할지 안할지 결정할께요"
 
분석 첫 세션에서 H는 치료자에게 공격적으로 연이은 질문을 했다. 이와 같은 그의 질문에는 분석세션에 대한 불신과 치료자를 통제하고 싶은 동기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신의 세계(마음과 영혼)를 감각의 세계처럼 통제하려다가 번번히 실패한 분노가 담겨져 있었다. 또한 H는 분석을 하는 치료자가 해답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의 패배감을 전가하고 있었다. H의 질문은 치료자의 전문성에 흠집이 내는 것 같았기에 이론적으로 명료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이러한 방법이 그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임상적 경험을 통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H에게 어떻게 분석을 통해 새로워진 자신에 대한 희망을 전해 줄수 있을까? 잠시 고민했다.
 
H의 질문속에 치료자의 전문성도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정신의 무력감을 해결할 수 없을것이라는 덫이 숨겨져 있었지만 H의 정신적 구조를 모르는 분석 첫 세션에 확답을 주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치료자는 H의 질문에 불 명확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대답이 H가 그동안 감각하지 못했고 고통스러웠던 정신(마음과 영혼)을 치료자가 대신 통제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H 씨를 내가 좀 알아가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치료자는 H의 질문을 슬쩍 피하면서 희망을 갖도록 최선의 대답을 했지만 H는 향후 다시 비슷한 질문을 할 것 같은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H는 평소에 꽤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고 주위로부터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상에서 자신의 시간을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사용했는데 이것은 대인관계와 업무능력에서 빛을 발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자신의 정신(영혼과 마음)적 세계에도 적용시켰다. 하지만 그의 정신세계는 계획처럼 통제되지 않았고 불안과 우울이 심해졌으며, 차마 이 사실을 주위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완벽할 것 같은 H의 삶에 대한 주위 사람에 대한 평가에 대한 두려움과, 스스로도 자신의 불안과 우울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H는 타인의 평판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이것은 자신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불안과 우울로 인한 삶의 고통을 감추려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H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비합리적이고 직관적이며 환상과 충동으로 뒤 덮여 의미를 알 수 없는 자신의 정신을 통제하려 들었다. H가 원하는 완벽한 삶은 외적인 현실에서도 내적인 정신에서도 기계처럼 작동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H에게 삶의 안전함을 제공하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H에게 삶의 안전함이란, 자신이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내적인 정신의 불확실성은 그의 존재를 흔들어 현실에서 연약한 자아의 뿌리를 드러나게 했는데, 이러한 내적 경험이 H에게 삶의 패배자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치료자에게 숨긴 채 치료자를 패배시키기 위해 질문을 통해 덫을 놓은 것이었다. 분석에서 H가 자신의 정신의 불확실성에서 나타난 불안과 혼란에 대한 공포를 통제하려는 태도는 현실에서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생기 없는 일관된 행동만을 고집하는 강박적인 삶의 태도로 나타나고 있었다.
 
강박적인 생각, 행동, 습관, 말 그리고 대인관계패턴을 비롯한 삶의 모든 태도에는 은밀하게 공포감이 숨겨져 있다. 균열되고 취약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것들은 예상 가능해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 충동, 긴밀한 상황, 미래는 강박적인 사람들에게 위험스럽게 경험되기에 무작위로 분출되는 내적인 정신적 세계의 환상과 충동 및 정서적 세계를 경직시키고 억압해야만 한다.
 
삶은 늘 명확치 않은 예상하지 못하는 일로 가득 차 있다그렇기에 어떤 사람에게 삶은 모험을 즐기는 호기심이 가득한 창조적인 놀이의 세계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곳곳이 지뢰가 가득한 전쟁터처럼 죽음의 불안과 공포로 가득한 위험한 세계이다. 세상은 한 개인의 자아(, 주체)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경험된다.
 
건강한 자아, 통합된 자아, 관찰적 자아, 훈습된 자아 뭐라고 말하건 ''라고 부르는 자아는 세상을 살아가기에 충분히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자아의 발달은 관계를 통해서만 이뤄지기 때문에 신경의학적인 약물치료나, 지시적인 인지행동 치료, 뇌 훈련, 단기 상담과 치료가 불가능하다. 자아는 오로지 진실한 유대관계를 통해서만 발달을 촉진시키기 때문에 치료자와 신뢰관계(치료동맹)이 형성되기까지 치료기간이 일정시간 걸릴 수 밖에 없다. 사실 H가 치료자에게 숨긴 자아(, 주체)의 수치감과 무능감은 그의 정신(마음과 영혼)속 깊이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었다. 만약 분석초기에 H에게 이러한 진실을 말했다면, 치료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 그리고 자신이 취약한 자아를 가졌다는 좌절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따라서 분석에서 H가  병리적으로 사용하는 강박을 통해 자신의 자아의 무능함을 치료자에게 숨기는 것을 일정기간 허락한 것이었다.  H의 분석이 진행되면서 그가 수치스럽고 취약한 자신을 치료자에게 숨길 필요가 없어졌을때, H는 자아에 관한 탐색과 함께 서서히 발전해 나갔다. 그는 치료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진실에 대한 용기를 얻었고 더 이상 강박을 사용할 필요없이 삶을 생기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해 나갔던 것이다. 


참자기 정신분석 심리치료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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